걷는 건 역시, 최고의 안주다

어디든 걷는다: 그리고 마신다 (5)

by 두지


걷기 좋아하는 친구 셋이 모였다. 걷기 실력으로 따지자면 셋 중의 으뜸은 나다. 체력적으로 보나, 걷기 경력으로 보나. 반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학생과 국가대표 선수 간의 차이랄까? 훗.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철원에서 부산까지 800km를 종주했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다녀왔으며, 이스라엘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거렀다. 걷기 대장으로서의 경력을 으스대며,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도 걷기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나만 따라오라고, 신나게 걷고 술을 마시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모여 걷자고 제안해서 만난 게 오늘이 세 번째다.


“넌 왜 맨날 늦냐.”


걷기 대장 체면 구기게 15분을 늦어버렸다.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하다 화제를 돌려 오늘의 코스를 브리핑했다. 여기 합정역에서부터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으로 갔다가, 양화대교를 건너, 선유도 공원을 스쳐, 성산대교 방향으로 한강 공원을 걷다가, 다시 홍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성산대교를 건너 망원동으로 가서 곱창전골을 먹는다. 곱창전골은 (맛집 블로그를 하는 건 아니고) 맛집 블로그 구독 경력이 십 년이 넘는 친구 A의 추천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합정역에서 금방이었다. 양화대교에 올라 조금 걸어가는데, 초입에 ‘한강 전망 카페’가 보인다. 이름에 걸맞게 한강 전망이 끝내준다. 이 카페를 지난번에 한 번 지나쳤는데, 전망이 너무 좋아 언젠가 한 번 다시 와서 한강 전망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고 B가 말한다. 술이라면 환장하는 여자 셋이 모였지만, 최상의 술맛을 위해 술은 산책 이후로 미루기로 하고 커피를 주문했다. 청소가 덜 되 뿌연 창문 너머로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망원동 2.JPG


창 밖을 바라보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눈다. 어제 동네 ㅇㅇㅇ빵집에서 빵을 먹었는데 아주 부드럽고 맛있었다, 너 빵이 백해무익인 거 모르냐, 그건 탄수화물을 혐오하는 너한테나 그런 거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빵을 먹으면서 정신을 수양한다, 나이가 드니 배가 불러서 맥주도 잘 못 마시겠다, 요샌 맥주 대신 매화수를 마신다, 매화수에는 이런이런 안주가 어울린다, 어제는 오징어를 오일에 볶아 안주로 먹었다, 오징어에는 타우린이 많다….


정말 시답잖고 쓸데없는 얘기들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는 남편 D랑도 잘 안 한다. 아니, D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이런 시시콜콜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끝 간 데 없이,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는 여자 친구들은 소중하다.


양화대교를 건너 한강 공원으로 내려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다. 코로나가 다소 잠잠해진 틈을 타, 다들 어디라도 가기 위해 한강에 온 모양이다. 한강 공원은 더 이상 돗자리를 깔 공간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사람이 덜 몰리는 곳을 골랐어야 하나. 장미가 아름답게 핀 한강 공원에 잠시 머물며 꽃을 구경했다. 금세 져버리고 말 건데, 이렇게 최선을 다해 활짝 펴있다.


망원동 3.JPG


다시 홍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성산대교로 올라가려는데 길을 못 찾겠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효리와 비, 광희 이야기를 하며 출구를 찾아 헤맸다. 공원과 도심을 왔다 갔다 하며 빙빙 돌아 겨우 성산대교로 올라갔다. 근데 도보가 없다. 도보가 있는 길은 공사를 하는지 막아놨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교를, 보도블록도 없는 찻길을, 무턱대고 걸을 수는 없다. 택시를 타고 망원동까지 가기로 한다. 오늘의 주요 코스 중 하나인 성산대교가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인 지조차 모르고 온 걷기 대장이라니. 친구들아 미안하다. 사실 나는 아무 계획 없이 아무렇게나 걸어….


화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딱 알맞게 지쳐서 술맛이 아주 좋을 거라는 희망에 찬 소리를 지껄인다. 망원동 초입에서 내려서 곱창전골집으로 걸어갔다. 곱창집에는 사람이 가득 차있다. 곱창전골에 소주를 시켰다. 채소가 가득 쌓인 전골과 얼음처럼 차가운 소주가 나왔다.


정말 맛있다.

정말 맛있어.


다들 맛있다고 난리다.


열심히 걷다가 먹어서 그런가 꿀맛이다. 소주도 꿀맛이다.


열심히 걸은 후 마시는 술보다 맛있는 술은 없다. 걷는 건 역시, 최고의 안주다.


망원동.JPG 곱차전골



청어람


정말 너무나 맛있는 곱창전골집... 이 날 이후로도 몇 번을 갔는데 데리고 간 사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격도 좋다. 소자 25,000, 중자 30,000, 대자 35,000. 양화대교와 한강을 걷다가 먹으면 더 맛있다. 소주가 쑥쑥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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