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걷는다: 그리고 마신다(7)
1-1. 구산동에서 멈추기
서오릉 녹지 연결로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 서오릉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구산동이다. 구산동에서는 뭘 먹냐면…. 떡볶이를 먹어라. 한껏 걷고 나서 당기는 음식이 떡볶이가 아닐 수 있지만, 구산동에 멈췄으면 그냥 떡볶이를 먹어라.
서오릉 녹지 연결로에서 구산역 방향으로 약 5분 정도 걸으면, 큰길 오른쪽으로 ‘통나무집’이라는 곳이 보일 것이다. 이름처럼 정말 통나무스럽게 생겼기 때문에 찾기 쉽다.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약 35년이 된 나름 노포인데,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떡볶이와 쫄면이 무려 각 2천 원 밖에 안 한다. 일흔 넘으신 사장님이 혼자 꾸려가는 곳인데, 한가한 시간에 찾아가면 이런저런 옛날 얘기도 많이 해 주신다. 내가 갔을 때는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다. 덕분에 할머니 사장님의 이야기를 무려 40분이나 들었다. 애기 때 찾아오던 손님이 지금은 성인이 되어, 전주, 부산, 심지어 미국까지 세계 곳곳에 사는데, 이 집 떡볶이 맛이 그리워 몇 인분이고 냉동해서 포장해가고 해외로 보낸다고. 1인분이 딱 맞게 들어가는 돌쇠 냄비에 쫄면 조금과 함께 나오는 쌀떡볶이. 해외 가서도 생각날 맛이다.
조금 더 걸어서 구산역 근처로 가면 예일 초등학교, 예일 중학교, 예일 고등학교가 모여있는 학교 단지가 나온다. 학교 근처에 어울리게 근처에 분식집이 많은데, 그중에 유명한 집은 코스모스 분식이라는 즉석떡볶이집이다. 이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추억의 맛.
1-2. 서오릉으로
서오릉 녹지 연결로에서 구파발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한 시간 반 코스이지만, 이미 두 시간을 걸은 마당에 새로운 길을 다시 걷자면 나름 결심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길은 첫 시작이 무지막지한 오르막 산길이다. 오르막 산길 앞에서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미련을 버리고 다시 서오릉 녹지 연결로로 돌아가자. 그리고 방향을 틀어 서오릉으로 향하자. 1km만 걸으면 된다.
서오릉을 아는가? 경주 고분군은 가 봤지만 서울 은평구에서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닿을 수 있는 서오릉이지만, 안 가본 서울 사람들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은평구에 살기 전에는 나도 그중에 하나였으니까. 서오릉 녹지 연결로에서 도로 쪽으로 내려가서, 열 걸음 정도 걸으면 표지판이 보인다. <안녕히 가십시오. 은평구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고양시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울 은평구를 벗어나, 경기 고양시 덕양구로 넘어왔다. 힘을 내어 서오릉으로 가 보자. 고즈넉한 왕릉 산책로와 시원한 생맥주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서오릉은 좋은 곳이다. 평진 곳을 잠깐만 걷는 걸 좋아하는 친구를 데리고 가도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 평지고, 한적하며, 고즈넉하고,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데 입장료는 1,000원!) 서오릉은 꽤 넓은데, 내가 걷고 싶은 만큼만 걸으면 된다. 중간중간 쉬었다 가도 좋다. 능을 다 구경했다면 이제 해지는 걸 구경하며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나름 접근성이 좋은 서울 근교라 그런지, 서오릉 주변에는 나름 먹을 게 많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장작구이 통닭
산을 오르내리다 먹는 장작구이 통닭의 맛을 아는가? 모른다면 이번 기회에 서오릉에서 한 번 맛보기를. 서울 시내가 아닌 이런 근교에 위치한 식당의 장점은 넓다는 거다. 식당은 꽤 크다. 아무 데나 앉아 통닭을 주문하자. 앉자마자 강냉이를 기본 안주로 주는데, 강냉이에 살얼음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숲길에서 수천번은 움직였던 두 다리의 피로가 싹 풀린다. 맥주를 마시다 보면 장작구이 통닭이 나온다. 그 맛이야 뭐. 혹시 산에서 두 시간을 걷는 동안 배가 안 꺼졌다면, 혹은 2차에 갈 생각이라면, 장작구이 통닭 대신 닭꼬치구이를 시켜도 좋겠다.
가맥
전주처럼 ‘가맥’이라고 별칭 되는 집은 아니지만, 서오릉 근처에도 가맥(가게에서 마시는 맥주)이 가능한 작은 동네 슈퍼가 있다. 어디냐고? 그냥 걷다 보면 나오는 동네 슈퍼다. (길치라 길 설명 잘 못함…. 근데 정말 가다 보면 나옵니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병맥주 두어 병을 꺼내자.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과자를 하나 사자. 값을 치르고 가게 앞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해 지는 동네를 구경하며 맥주를 들이켜자. 2차(혹은 3차) 생각이 절로 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