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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Apr 01. 2021

걷기의 효능 1: 소심함이 줄어든다

허머스, 바다, 그리고 사막: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6


“가게 왜 안 열어? 8시에 연다며.”

D가 따지듯 물었다. 


“몰라. 인터넷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 오픈 시간 8시….”     

시간은 8시를 훌쩍 넘어 8시 20분이 되었다. 이 놈의 상점은 대체 언제 여는 걸까. 상점 주인씨, 어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여시오! 허머스 햄 피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 한단 말이오! 혹시, 설마, 오늘 또 안 여는 건 아니겠지.      


“여기서 짐 지키고 있어봐. 내가 어디 가서 물을 구해볼게.” 

터프하게 말을 던지고 길을 나섰다. 내 남편이 목이 마르다? 내 어떻게든 물을 구해오겠어! 어제도 가 봤던 놀이터. 혹시나 해서 왔지만, 어제 없던 수돗가가 오늘이라고 생길리가 없다. 다른 놀이터로 가 본다. 구석에 수돗가가 있다. 틀어봤지만 물은 안 나온다. 나쁜 수돗가....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신다. 저기요! 아주머니를 불러 세웠다. 물병을 흔들며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해 보였다. 목이 말라오는 것과 반비례하게, 소심함은 줄어들고 있다.     


“임마?”     

임마? 임마가 물이라는 뜻인가.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머니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따라가다가 아저씨 한 명을 만났다. 잘 아는 사이인지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한다. 그러고는 나를 가리키며 뭔가 설명한다. 몸짓을 보아하니 이런 말인 것 같다. 이 후질구레한 트레커가 물이 필요한 것 같은데. 집 마당에 수돗가 있어?      

아저씨가 따라오란다. 아주머니가 얼른 가보라며 등을 떠민다. 남자가 대문을 열더니 마당의 수돗가를 가리킨다. 아. 물이다. 물. 강 같이 흐르는 맑은 물. 긴 호수를 타고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물 두 통을 가득 채웠다. 야호. 


D가 기다리고 있는 상점 앞으로 가서 물을 반통씩 해치웠다. 상점 문이 열려있다. 꿈꿔왔던 빵, 햄, 허머스, 피클을 샀다. 샌드위치를 다섯 개 만들었다. 하나씩 먹고 나머지는 빵 봉지에 쌌다. 이제 걷자.      


바람이 많이 부는 마른 계곡 길을 따라 걸었다. 한 시간 쯤 걷다 샌드위치를 한 개씩 또 해치웠다. 도로를 하나 건너, 숲길로 들어가 남은 샌드위치도 해치웠다. 아름다운 숲길이다.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평화로운 풍경. 새소리를 들으며,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보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길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길 끝에서 죽은 여우를 만났다. 굶어 죽었을까. 길을 잃었을까.  


밤새 꿈꿔온 샌드위치.




야영장에 도착했다. 구역도 나누어져 있고, 수돗가도 있는, 멋진 야영장이다. 행복하다. 끝도 없이 리필할 수 있는 물이 잠잘 곳 바로 옆에 있다니. 강 같은 평화다. 손과 얼굴을 씻는 일 따위에 귀한 물을 마구 썼다.    

  

“S, 네가 낸 소리야?”

“아닌데.”

“네가 코 곤 거 아냐?” 

"나 코 안골아. 너나 골지." 

"너, 코 골아."

“안 골거든? 어쨌든 나 아니야.”

“그럼 이게 무슨 소리지?”    

 

킁킁. 킁킁. 텐트에 누워있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난다.    

  

“설마. 멪돼지인가?” 

“우리 텐트 바로 옆에 와 있는 것 같은데.”

“D, 아까 먹을 거 다 배낭에 잘 넣어놨지?”

“어.”

“입구에도 없지? 먹을 거.”

“당연하지. 멧돼지가 냄새 맡고 텐트 다 찢어버릴라.” 

“근데…. 너무 춥지 않니. 슬리핑 패드 깔걸 그랬나봐. 몸이 바닥과 함께 바위가 되어가는 기분이야.” 

“지금이라도 깔아?”

“아니. 귀찮아.”

“그래도 잠은 온다…. 많이 걸어서 피곤한가봐.”     


아우! 아우우우!      


언덕 너머에서 여우 떼가 구슬프게 운다. 멧돼지 소리에, 여우 소리에 자꾸 깨지만 다시 잠들기가 어렵지는 않다. 잘 걷고,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잠도 잘 오는,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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