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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Apr 03. 2021

걷기의 효능 2: 자꾸 뭔가 먹고 싶다

허머스, 바다, 그리고 사막: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7



“정말 너무 추웠어. 어젯밤.”     


두 손을 비비며 내가 말했다. 손가락 끝이 얼어 얼얼하다. 5분 만에 후다닥 텐트를 정리했다. 어서 걸어야 몸에 열이 나고 덜 추울 것 같아서. 왜 기껏 챙겨온 내복을 입지 않고 잤을까. 정말이지 어리석고 게으른 우리.... 어제는 정말 너무 추웠다.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낮고. 11월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추우면 어쩌나. 산 중턱 야영장이어서 추운 거길 바란다. 소들이 어슬렁거리는 수돗가로 가 물을 채웠다. 얼른 걷자. 걸어야 몸이 더워지지.      


몸에 열을 내기 위해 빠르게 걸었다. 단숨에 메론 산 정상에 닿았다. 아직 춥다. 뷰 포인트로 가니 저 멀리 갈릴레호가 보인다.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호수. 어렸을 때 성경에서나 읽어봤지, 실제 이렇게 보게 될 줄을 몰랐던. 호수가 햇살 아래서 반짝이고 있다. 하루만 더 걸으면 저 호수에 닿는다. 


메론 산 정상. 저 멀리 갈릴리호가 보인다


메론 산을 아래로 내려오니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백여 명쯤 모여 있다. 학교에서 현장 학습을 온 모양이다. 아이들 사이에 적당히 껴서 아침에 만들어 놓은 차가운 쿠스쿠스를 먹었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입맛도 없다. 모래알 같은 쿠스쿠스.... 이런 거 말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뜨끈한 국밥 같은 거 말이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누군가의 생일인가보다.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이 푸딩을 나눠 먹는다. 우리도 한 입만 주지…. 스테이크 먹는 주인을 쳐다보는 개가 된 심정이다. 






다시 숲으로. 오늘은 계속 숲길이다. 숲 따위는 눈에 안 들어온다. 먹을 것만 생각난다. 온갖 것들이 먹고 싶다.      


“떡볶이 뷔페 가고 싶다. 제주도 트레킹 하다가 시내 도착해서 갔던 거기 기억나? 튀김도 먹고 싶다.”

맛있는 떡볶이를 떠올리니, 아까 먹은 맛대가리 없는 쿠스쿠스가 독약처럼 느껴진다.      


“S, 너는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

“너는 싫으냐?”

“너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떡볶이 뷔페가 근방에 있다면, 십만 원을 주고라도 먹으러 가겠어.”

“나도. 아니 난 15만 원도 줄 수 있어.”

“나는 샤브샤브 먹고 싶어. 만약 평생 한 가지 메뉴만 먹어야 한다면, 난 샤브샤브를 선택할거야.”

“그건 반칙 아냐? 샤브샤브에는 고기도 있고, 야채도 다양하고, 국수도 있고, 죽도 있고….”

“그러니까 현명한 선택인거지. 김치도 먹고 싶어. 맛있는 김치 볶음밥이 먹고 싶어. 한국에 살 땐 한국음식 잘 안 먹었는데. 한국을 떠나니 먹고 싶어.” 

“나도 먹고 싶어. 라면 스프 같은 거라도 챙겨올 걸 그랬어.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커피도 마시고 싶어. 따뜻하고 고소한, 전문점에서 만들어주는 정말 맛있는 라떼. 초밥 뷔페도 가고 싶다. 카레도 먹고 싶다.”

“하지만 우리 배낭 속엔 쿠스쿠스와 크래커뿐이지.”


오늘은 계속 숲길이다. 숲 따위는 보이지 않고 먹을 것만 생각난다. 온갖 것이 먹고 싶다.


메론 마을 근방을 지나, 다시 숲길을 걷는다. 냇가에서 연인이 다정하게 투닥거리고 있다. 저렇게 투닥거리다,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맛있는 걸 먹겠지.... 뭐 그래도, 먹고 싶은 게 많다는 거 말고는 불만이 없는 하루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걷기 컨디션이 최상이다. 빠르게 빠르게, 쉬지 않고 걸었다. 걷기 좋은 날이다. 야영장으로 가기 위해 트레일에서 벗어나 걸은 오르막 길 말고는 험난한 길도 없었다.  

    

30분을 가파른 길을 따라 올랐지만 미리 물색해 놓은 야영장은 흔적도 없다. 나무가 듬성 듬성 서 있는 허허벌판에 텐트를 쳤다. 오늘밤은 어제처럼 춥지 않길. 저 멀리서, 코요테들이 운다. 


허허벌판에 텐트를 쳤다. 저 멀리서, 코요테들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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