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선택,
시댁과 합가를 해야한다면

시댁과 합치기 전에 꼭 따져봐야 할 것들

by 이틀
조선시대와 현대시대의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시댁합가를 하게 된 계기


둘째를 낳고 복직을 하면서 시댁합가를 고민했었다. 내 직업 특성상 매일 칼퇴근은 절대 불가능하고, 가끔 밤샘작업도 해야하고, 거기에 주말근무도 종종 발생을 하기때문에 누군가 집에서 전폭적으로 아이들과 가사를 담당해주지 않는 한 내 직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전업주부를 해야하느냐의 기로에섰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입주도우미도 알아보고 면접도 봤었다. 연년생 아이에, 둘째는 젖먹이였으니 금액이 상당히 높았다. 입주도우미 비용, 큰아이 기관비용, 거기에 믿을만한지에 대한 걱정까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복직과 전업맘 사이에서 수많은 날을 고민으로 지새웠다.


그때 지원군으로 시어머니가 나서셨다. 아이들을 봐줄테니 합가하면 어떻겠냐구. 하, 그런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남들이 다 말리는 시댁살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정말 복직과 전업맘 사이 고민에서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검색도 하고, 질문도 올려봤었다. 그런데 댓글들이 전부 다 시댁합가는 절대 안된다는거였다. 이미 시댁과 같이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선배에게도 물어봤다. 선배는 자기도 지금 같이 살지만 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몸은 편한데, 많이 불편할거라고. 그리고 결국은 시부모님도 불편해진다고. 서로를 위해서는 그냥 근처로 이사가라고. 그것도 큰 모험이라고 조언을 했다.


그런데, 나는 시댁합가를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여건때문이었고, 내 직업 특성 상 야근이 많기때문에 아이들에게 시부모님의 보살핌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근처로 이사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당시 둘째가 아직 돌도 안된 젖먹이라서 어둠컴컴한 새벽을 뚫고 매일 시댁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것도 힘들것 같아서였다.


시댁과 합가 이후


많은 각오를 했지만, 시댁과 같이 사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양육문제와 관련해서는 다행히 어머님과 별 충돌이 없었지만, 시댁이라는 존재는 남편의 부모님이기 이전에 완전한 남남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도 위로받을 곳은 없었다는 것이고, 반대로 남이 내 아이를 봐주는 것이니 엎드려 절이라도 할 만큼 고마워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손주가 핏줄 아니냐 믈었다. 아이만 놓고 봤을때는 그렇다. 하지만, 손주를 돌보는 일은 우리나라 정서 상 엄마의 일이고, 며느리의 일이다. 남편은 보조적인 역할일뿐, 아직도 우리나라는 주 양육자를 엄마로 보기때문에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것은 즉, 며느리의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때문에 며느리는 퇴근 후에도 피곤한 몸을 쉽게 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퇴근만 기다리고, 며느리의휴가만 기다리는데, 그 앞에서 차마 쉬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젊은 나도 힘든데 70노모는 얼마나 힘드시겠나. 그 힘든 일을 대신했는데, 그 앞에서 나마저 응석부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같이 일을 하고 퇴근을 한 남편은 피곤하다고 쉰다는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볼멘소리조차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어머님은 아무리 힘드셔도 본인이 일을 하셨지 아들은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 하셨다. 집안 일 중에 특히 부엌일은 여자가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다보니 남편도 점점 도와주기 힘들게 되었고, 결국 내가 없는 동안은 어머님이 도와주시지만,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집안 일은 내 차지였다. 그러니까 나는 집으로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터로 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부엌이라는 공간은 오로지 여자들이 가족들을 챙기는 곳으로 인식되어온지가 수백, 수천년이다. 이것을 오늘날 나 혼자 개선장군처럼 바꿔보겠다는 의지는 수 많은 적군들 속에 혼자 소총 들고 들어가 싸우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댁이라는 거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시대와 투쟁해야 하는것이고, 시어머니의 과거와 투쟁해야 하는거였다. 그 시대의 가치관을 현대의 나에게 강요 당하는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의 여자와 현대의 여자가의 충돌이라고 봐야한다.


시댁합가의 장점은 뭐가 있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니 단점만 수두룩한것 같지만, 사실 장점도 아주 많다. 일단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었다. 워킹맘 동료들이 친정이나 시부모님이 거리상 멀거나 사정이 안되서 도움받지 못할 경우 힘들어하는거 많이 봐왔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이 감사해하고 있다. 장점으로 몇가지를 꼽자면...


첫번째 출근과 퇴근시간의 자유로움이다. 사실 시가 근처에 살아도 되긴하는데, 아침에 정말 내 몸하나만 챙겨서 나오면 되니까.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아이 옷을 입히고, 지각할까봐 혹은 교통편을 놓칠까봐 아이를 재촉하는게 아니라, 그냥 잠이 덜깬 아이볼에 입맞춤만하고 나오면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갑자기 퇴근시간에 회의가 잡히거나 야근을 하게 되면 어머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회사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두번째는 아이들의 정서였다. 집안에 같이 생활하는 어른이 많다보니까 아이들은 외로울 틈이 없다. 어른들이야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법인데,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계속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존재다. 퇴근하면 정말 피곤에 쩔어서 아이들 책 한권 읽어주기 벅찬데 호기심때문에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정성스럽게 대답하기도 너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른들이 많으니까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질문하고 배운다. 이 세상에서 부모말고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100%순수한 사랑으로 대하고 대답해주겠나.


세번째 장점으로 평일엔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칼퇴근하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집안일을 어머님 혼자 하시도록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칼퇴근을 할 수 없는 구조에 1시간정도의 퇴근시간이 소요된다면, 이미 집에가면 8~9시다. 그 시간에 집안에 밀린 빨래와 설겆이 하느라 아이와 눈맞춤 할 시간도 부족한게 워킹맘의 현실이다. 평일엔 어머님의 보조를 조금 받으면 집안일이 훨씬 줄어든다.


혹시 어머님이 힘들어하신다면 가사도우미 도움을 받는것도 좋다. 나 또한 복직초기에 어머님이 힘들어하셔서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좀 받았었다. 이후 어머님과 내가 잘 조율해가니 가사도우미의 도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적고보면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의 협동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남자보다는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가끔 어머님 힘드신 모습 볼때마다 참 죄송스럽다. 합가한 이후로 흰머리도 훨씬 늘었고, 많이 늙으셨다.


아이들 방학때,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칠순이 다 되신 어머님이 대답도 제대로 못할 정도 일때도 있으신다. 집안에 다른 어른들도 있지만 엄마가 없는 동안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어머님이시니까. 그래서 서운해도 조금 더 참고, 나도 좀 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가끔 화가 난다. 계속 참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 어머님 세대나 우리 세대나 왜 달라지지 않는가, 에 대해서 화가 너무 난다. 사회는 변화는데 왜 문화는 변화지 않는지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난다.


시댁합가를 선택한다면...


아이들 봐주겠다고 시어머님이 이야기하셨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르신들도 안다. 아이들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거기에 며느리 눈치까지 보면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를 맡겨보면 안다. 어르신들 그냥 팍팍 늙으신다. 친정엄마 늙으시는 것 보기 힘들다는 동료 워킹맘들도 있다.


과거로 타임머신을 돌려서 어머님이 다시 그런 권유를 하신다면 여러 어려움과 서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도움인가.


선택에는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다. 다만 그 선택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나의 모습만 있을뿐...여러 가지 서운함, 그리고 변화지 않는 문화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존경과 사랑으로 시부모님을 바라볼 수있는 여유도 가져보자. 내 모습은 그대로 아이들의 거울이 될테니까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http://omn.kr/fs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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