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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Nov 10. 2020

사치 혹은 경험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린시절의 내가 보인다.


나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 아이였다. 사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다. 이런 성향의 아이에게 가난은 힘든 일이었다. 해보고 싶은 욕구를 계속 억제해야 하니까. 가난이 나쁘진 않지만 욕구를 계속 억제하고 컨트롤 하는 일을 배우기란 넘나 힘든 일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성향과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고로 나는 지금도 무언가 계속 해보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이 많은 성인 아이다.)


지금, 딱 둘째에게 그런 모습이 보인다.


요구하는 것이 많다. 가고 싶은 곳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친구들은 다 있는데(스마트폰) 왜 나는 없느냐며 투덜대기도 일쑤고.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친구만 보는 것이겠지만)


반면 첫째는 욕심이 별로 없다. 누군가 용돈을 주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다. 그리고 억지로 받고나서는 엄마가 관리해달라며 돈을 내미는 아이. 둘째는 용돈을 받으면 절대로 엄마를 주지 않으려고 하며, 내가 뺏고 나서도 나중에 집에 와서 다시 손을 내민다. 자기 돈이니 달라고.


물론 어느 엄마나 그렇듯이 다 들어주지 않는다. 내 어린시절만큼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넉넉한 살림이 아니기도 하고, 아이의 넘치는 욕구를 다 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때문.


반면 첫째의 요구는 좀 들어주는 편이다. 불평불만이나 요구가 별로 없는 아이가 어쩌다가 한 번 말하는 것은 들어주고 싶은 것인데, 이게 또 둘째는 불만이다. 왜 형아말만 들어주냐고.


두 녀석의 다른 성향을 보면서 남편과 나의 성향이 얼마나 다른가 다시한번 느낀다. 물론 반반 섞여서 아이들이 된 것이지만 기본적인 기질을 볼 때마다 내 어린시절과 남편의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예전엔 이런 기질을 많이 억누르려고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것을 장점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니 사치를 넘어서는 수준만 아니라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억누르는 방향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수도 있으니까. 


사실, 이렇게 말을 해놓고 그것이 어떤 방향이 될지, 그것이 어떤 미래가 될지 엄마인 나는 잘 모른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정 선을 엄마인 나는 매일 연구를 해야 하겠지.


둘째는 얼마전부터 부쩍 먹고 싶은게 많아졌다. 초등 2학년. 아이가 주로 먹고 싶어하는 것은 피자, 햄버거, 콜라 등이다. 물론 잘 안사준다. 집에서 해주기도 귀찮다. 그럴때는 아이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유도(김밥 같은 것)를 하는 편인데 어제는 잘 안넘어왔다. 


초밥을 먹고 싶단다. 초밥에 첫째의 눈이 동그랗게 빛났다. 초밥은 큰아이의 최애 음식이다. 회도 먹고 싶단다. 큰 아이의 눈이 더 동그랗게 빛났다. 그런데 입으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안돼. 너는 맨날 엄마가 해주는 밥 말고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하니"


동생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첫째에게 물었다.


"너도 먹고 싶어?" 

"나는 엄마가 해준 밥도 좋고, 초밥도 좋아. 뭐든 상관이 없어."


어쨌든 두 아이가 교집합으로 초밥을 꼽았다. 가성비로 따지자면 코스트코 초밥만한게 없으니 코스트코로 갔고, 기왕 간김에 회도 담아왔다. 대형마트에 가면 이래서 지갑이 홀쭉해진다.


저녁 식탁에 내려놓으니 두 아이가 맛있게 먹는다. 저녁으로 거금을 쓰고는 속이 좀 쓰렸다. 식비 절약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안 될 것 같다. 


기왕이면 돈으로 돈을 불리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데, 어쩌면 경험으로 가는 길에 소소하게 사치는 피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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