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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떠나 보내요

by 주둥이긴개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인거 같다. 또한 오래 담아놓는 편이기도 하다. 태생적으로 그런지라 이러한 부분을 바꾸는 것은 힘든 것을 넘어서 불가능하다고도 생각이 든다.


사람의 한가지 면은 좋기도 나쁘게 되기도 한다. 생각이 많고 오래가서 이제까지 좋은 점도 많았지만 나쁜 점들도 꽤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하나는 미움이 오래가는 것이다. 당일에 누군과와 다툼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그 생각을 버리고 싶지만, 마치 러브버그마냥 생각이 자꾸 증식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다가 뇌가 한계치에 이르면 지쳐서 자버리는 것 같다. 그럴 때는 금방 금방 잊어버린다는 친구들이 부러워진다.


중학생 때 나는 작은 교회에 다녔다. 책상 정리도 하고 바닥도 청소하면서 주말마다 그런 봉사로 일과를 보냈었다. 어느 날 그 교회의 목사님이 헌금으로 골프를 치고 사적인 용도로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실히 신앙심을 키워온 당시에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허나 신이 잘못한게 아니라, 그 목회자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성인이 되서도 교회는 나왔지만,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나는 의심 속에 살아갔다.


개신교 신자들 속에서 나는 겉돌아있었다. 나누는 이야기 속에 공감을 잃은 채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주일마다 기계적으로 교회에 나올 뿐이었다. 주일에 나올 때마다 환한 웃음이 가득한 밝은 사람들의 빛 속에서 내 마음의 어두움은 선명하게 다가왔다. 연말이 지나고 지인이 성당에 나와보라는 이야기를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이제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성당으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쌓아왔던 시간들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신세였지만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내려놓는 순간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사실 나는 그 목사님을 마음속으로 계속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발목을 잡는건 내 상황도, 나를 둘러싸는 환경도 아닌 마음 속의 미움이었다. 떠나기로 마음 먹으면서 나는 그분을 용서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에 미워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용서하면서 나는 새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릇은 비워져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에는 먹지 못하는게 들어갈 때가 있다. 증오는 마음속에서 소화되지 않는다. 그릇 자체를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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