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친구들로부터 이 그룹을 소개받았을 때,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노래는 듣지도 않은 채, 그룹명부터 온라인 게임의 키를 나열해서 대충 지은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오타쿠들의 아이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하면 나도 그 그룹으로 분류될 것만 같은 불안감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는 존중하지만, 동성애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아니다. 나도 가끔씩 애니메이션을 보는데, 남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원체 아이돌 노래는 잘 듣지는 않지만, 아마 노래 자체를 자주 듣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올바를 것이다. 예전에 힙합은 자주 들었지만, 심지어 목소리만 듣고도 어느 래퍼인지 알아맞출 정도로... 하나 몇 년이 지나니 지겨워졌다. 나만 돌아봐도 문화는 소비재인 거 같다. 신선 우유팩처럼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렇게 힙합과 거리를 두다 보니, 즐겨 듣는 노래가 일상에서 증발됐다. 나에게는 새로운 우유팩이 필요했다. 평소 사람들을 만나면 음악에 대해 할 얘기가 없었다는 것도 새로운 노래를 찾는 동기에 한 몫할 것이다.
나는 유튜브에서 요즘 노래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다. 여러 노래를 모아놓은 영상이 있길래, 클릭하고 에어팟을 귀에 박았다. 흘러나오는 노래 중에서 딱히 끌리는 노래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아무 감흥도 없는 채,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에서 떠다니는 단풍잎처럼 그렇게 한곡 한곡 귀로 흘렸다.
"아!"
정확하게 첫 느낌을 표현하기는 참 어렵다. 그냥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계속해서 듣고 싶은 노래였다. 전자 기타음과 키보드의 소리가 타격감 있게 어우러지는. 마치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터지는거 같다. 새롭다는 느낌보다는 클래식하다. 클래식한데, 왜 자꾸 어렸을 때 향수를 자극하는 걸까. 코 끝에 전해지는 그 향은 투니버스다. 노래를 듣는 내내 어릴 때 최애 채널이었던 투니버스가 자꾸 떠올랐다. 다시 유튜브 화면으로 복귀해 누가 부른 건지 살펴봤다.
"QWER"
머리가 띵했던 거 같다. 무수한 물음표가 연어처럼 척추를 거슬러 올라가 뇌신경으로 전달되었다. 대충 이름 짓고 대충 만든 거 같은 이 그룹이 부른 노래라니! 밀려오는 모순이 소싸움의 뿔처럼 부딪혀왔다. 모니터를 응시한 채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반성했다. 난 아직도 편견이 많은 인간이구나. 심지어 이 그룹은 메인 보컬이 뛰어났다. 목소리를 듣는 내내 왠지 모를 무언가의 간절함도 느껴졌던 거 같다.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근데 생각해보니 나로서는 처음 듣는 우리나라의 여자 밴드 노래다.
누군가 요즘의 나에게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고민중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