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지 거진 3개월이 지나, 한창 통화하다가 할말이 비워진 침묵 속에서 그녀가 말을 건넨다.
"A는 왠지 많이 참고 있는거 같아요."
"...나는 다른거보다 나라서 싫은건지 아니면 그 자체가 싫은건지 모르겠어요. 전자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구요. 애초에 얘기 꺼내는 것도 마치 내가 안달나서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얘기도 꺼내지 못했어요. 그냥...모르겠어요."
"내가 설마 그쪽 안좋아해서 그러겠어요!"
깜박이듯이 찰나의 빛이 마음 속을 비췄다. 내가 상정하는 최악은 아니니까.
"그러면 B는 혼전순결이에요?"
"아뇨. 저는 관계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예전부터 남자랑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나도 내가 이상한거 알아요."
그래 정말 이상한 일이다. 들을 때는 뭔가 이해가 되나 싶더가도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이해가 안 된다. 마음 속을 비췄던 빛은 양자역학처럼 다시 입자가 되어 도시의 밤으로 흩어졌다.
타박할 수도 없었기에, 대충 이해한 척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로 마음을 감췄다. 그냥 그동안 맞잡았던 손과 시간들이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노력해볼게요. A가 정말 힘들면 얘기해줘요."
여전히 항상 힘들었다. 다른 연인들의 타오르는 불이 우리에겐 왜 만질 수도 없는 뜨거운 불인지. 서로 사랑하면서 자연스레 할 줄 알았던 것은 왜 부자연스럽게 노력해야 하고 이토록 힘들어야 하는지.
비로소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망설여진다. 나는 이 사람을 포기해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주씩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