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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Sep 19. 2022

엄마, 꼭 수녀가 되기를 바랄게

- 결혼은 하셨어요?

- 아니요, 아직요.

- 이렇게 예쁘신데 왜 안 하셨어요?

  (실제로는 ‘괜찮으신데.’라고 한 것 같지만, 알게 뭐람?)

-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건데요?


 그렇다. 나는 예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믿어주길 바란다. 책을 뒤져봤자 내 사진은 나오지 않을 것이고, 초록 창에 내 이름을 검색한들 나 말고 수많은 장 여름들만 뜰 테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예쁘다고. 그것뿐 인가? 매달 직장에서 따박따박 월급도 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똑바로 보고 거꾸로 봐도 일등 신붓감인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결혼을 못했다.


‘왜?(흑흑)’


 안 하려고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나이가 찰랑찰랑 차도록 결혼을 못했다. 결혼이 어려운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귀신도 아닌 그것을 내가 꽤 무서워한다는 데 있다.


 부모님은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까지도 많이, 아주 많이 다투셨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온 어느 날에는 엄마의 화장품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깨져있었고 유리 파편과 묽은 로션이 섞여 바닥에 엉망으로 나뒹굴었다. 또 다른 날에는 엄마의 옷들이 가위에 잘려 색색의 헝겊 조각들로 안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견뎠던 날에는 어린 나와 더 어렸던 동생이 모든 광경을 보기 전에 엄마가 서둘러 빗자루를 들고 그것들을 쓸어 담아서 버렸고, 견디지 못한 날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가 아닌 채로 아무도 집에 없었다. 나는 유리조각을 피해 발을 딛고 방으로 들어가 소리가 나지 않게 문고리를 돌려서 문을 잠갔다. 침대 위로 올라가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는 멍하니 있었는지, 혹은 울음을 삼키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꽤 많은 날들이 끔찍했다. 아빠는 자주 소리를 질렀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던져서 부쉈다. 엄마는 울었고 때로는 맞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서 날아가 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쫓겨날지언정 도망가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고개를 뒤로 돌리면 늘 그 자리에 불안한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 나는 엄마가 아빠랑 헤어졌으면 좋겠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희들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나는 나에게 화가 났고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졌다. 엄마가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 슬펐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게 되어서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스스로를 원망했고, 가끔은 나를 태어나게 한 엄마를 원망했다.


 내가 24살이었던 겨울,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보통의 가족의 모습을 하며 살고 있다. 나의 가족이 평화로워 진지 10여 년이 지났다.

시간은 상처를 덮었지만 치유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시간의 한계였다. 나는 아직도 성인인 남자가 소리를 치는 모습을 보면 살이 떨린다. 폭력적인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보면 우스울 정도로 깜짝깜짝 놀라고, 어쩔 때는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무서웠다. 결혼을 해서도 잘 살지 못할까 봐, 나 자신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주지 못할까 봐 너무나 두렵다. 엄마는 결혼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모두가 자신처럼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엄마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듯 나 역시 그런 상황에 어쩔 도리 없이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에게 결혼이라는 말의 무게는 남들보다 조금 더 무겁다.


 결혼생활이 고되었던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수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지하여 살고 싶다고. 때로는 혼자서 사는 것이 둘이 함께 사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쓸데없고 지나친 두려움까지 감싸 줄, 거의 유니콘에 가까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굳이 위험부담을 가지고 결혼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 것이다. ‘결혼할 때가 되었고, 그때 내 옆에 있는 남자와 결혼한다.’는 선택은 나에게 없다. 엄마의 딸인 덕으로 결혼을 잘못한 여자가 어떻게 사는지 필터 없이 경험했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는 데 있어서 나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더 단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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