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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Oct 29. 2022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당연하게 나를 비혼주의자라고 정의하는 엄마의 말에 발끈하여 쨍한 목소리로 반박을 했다.

“나 비혼주의자 아니거든!” 그러자 엄마는 부담스럽게 반색을 하면서 결혼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괜히 젓가락으로 반쯤 남은 밥을 들쑤시며 내일 일도 모르는데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어떻게 알겠냐고 둘러댔다.

사람들은 곧잘 내가 비혼주의자라고 오해한다. 친구들은 넌 결혼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가볍게 남자나 만나 보라며 웬 날라리 같은 애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결혼주의라는 말은 없으면서 왜 비혼주의 라는 말만 있는 것일까? 마치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결혼주의라는 말은 굳이 필요가 없고, 혼자 사는 것은 특이한 일이기 때문에 비혼주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두려워한다는 이유로 무례할 정도로 간단하게 비혼주의자라는 틀을 씌운다.

하지만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저 결혼에 대하여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결정 장애 상태이며, 혹은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일 뿐인 것이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기가 취미인 나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그것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겁이 난다. 더구나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천하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내가, 누군가를 만나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아이를 낳고 젊음을 갈아서 그들을 키워야 하는 희생과 수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아직까지도 비혼주의자를 선언하지 않은 이유는 고된 하루의 끝에 달이 떴다고 전화를 할 사람이 있기를 소망했기 때문이고, 주름이 가득 차 예쁘지 않은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구태여 가장 예뻤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는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 모든 기대가 동화 속의 꿈인 줄 알면서도 가슴을 간질이는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임에도 충분히 행복하다. 하지만 진실한 사랑이 주는 안정감 또한 마음을 풍족하게 만드니 혼자 있다가도 연애가 하고 싶고 또, 그러다가도 다시 혼자 있고 싶어 져서 부단히 들여 보아도 내 마음 하나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한들, 모든 사랑이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별안간 사랑이라는 기적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심장을 덜어 내는 듯한 이별도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한 순간 나를 쫄딱 젖게 한다. 사랑이 예상대로 되지 않듯이 인생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24살에 취직을 하고 32살에 디자인 회사의 대표가 되어있을 것 이라던 내 스무 살의 야망은 애초에 깡그리 엎어지고, 지금 나는 돈 계산이 주요 업무인 평범한 사무직원이 되었다. 꼼꼼함과 거리가 아주 먼 성격임에도 불고하고 말이다. 인생에서 계획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저녁에 불굴의 의지로 남겨 놓을 치킨을 먹어야지.’ 같은 얄팍한 것들뿐이다. 어쩌면 빛나는 식탐으로 그마저도 못 지킬 확률이 높지만.


그래서 어쩌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결혼과 비혼을 쉽게 정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나와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의 마음을 모르겠고 어설픈 계획은 매일 망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일을 속단하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았다. 단지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를 보람되게 보내려 했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랑이 바람 끝에 맺혀 들어올 수가 있도록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놓는 것뿐. 운이 좋으면 만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또 나름의 행복을 그려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내게 흐르는 시간의 물결이 반짝이도록 혼자서도 완전한 매일을 맞이하려 부단히 애를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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