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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Oct 11. 2023

엄마가 가출했다

화요일 오전. 출근해서 커피를 한 잔을 마시고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되니?” 

“응 되지.” 

“나 너희 아빠랑 더는 못살겠다.” 

“응?”

“엄마 이혼해야겠어.”

“어, 해! 하면 되지. 이혼해.”

왜 그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인들 뭐가 그리 중요할까? 마치 양치기의 거짓 외침에 진저리가 난 마을 주민처럼 엄마의 이혼 선언은 내게 익숙했다. 그러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그 뒤에 붙은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엄마 너희 집에 와 있어.”


아뿔싸! 비밀번호를 바꾸어 놓을 걸. 내 집의 한심한 청결 상태를 보고 기겁을 할 엄마가 떠올랐지만 그녀의 마음이 더 쑥대밭일 테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끝내 울먹이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울음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의 푸념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속이 갑갑했다. 나의 안식처였던 집이 엄마의 존재로 인하여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공연히 모두 잠근 캐비닛들의 문고리만 다시 잡아당겨 확인하였다. 나의 퇴근 만을 기다린 엄마에게 밥을 차려 주고 도망치듯 헬스장으로 향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근손실이 올 지경이었다.


엄마와 동거를 하는 것은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상기시켰다. 툭하면 물건을 집어던지던 아빠와 폭력 앞에 무기력한 엄마. 각자의 방에서 분노와 슬픔으로 떨고 있던 동생과 나의 모습은 들춰서 좋을 것이 하나 없는 기억이었다. 엄마의 등장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미성년 시절의 불행 속으로 다시금 머리통을 집어넣게 만들었다. ‘가족이란 거 진짜 지긋지긋하다.’ 넌더리가 났다.


“엄마 너희 집에 한 달 정도 있으려고.”

“한 달? 한 달은 힘들 것 같은데.”

나의 대답을 들은 엄마는 섭섭해하는 듯 보였다. 일주일도 힘들 것 같은데 한 달 이라니. 하지만 엄마의 서운함을 걱정하기보다는 나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엄마는 딸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는 것처럼 자꾸만 청소를 했다. 물건을 치우고 빨래를 해서 내가 알 수 없는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조금씩 더 깨끗해져 있었지만 나만 아는 집의 질서가 깨트려지고 있었다.


불쌍하고 한심한 엄마의 이혼 선언은 한낱 허상에 불과했다. 대단한 다짐도 치밀한 계획도 없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당연히 딸이 재워 줄 거라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뛰쳐나온 나의 엄마를 보라. 이제는 가엾지도 않다. 이 멍청한 여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엄마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우리 집에 못 있어. 나가야 해. 친구들 오기로 했어”

“엄마가 돈 줄 테니까 너희 나가서 자.”

“안 돼. 엄마가 나가야 해.”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내 인생에 더 이상 그녀의 인생이 개입되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인생에서 전부 다 꺼졌으면.’ 마음에서 불쑥 튀어나온 생각에 놀랐다. 내가 처음부터 못된 딸이었던 것은 아니다. 삼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를 위로하고 달래 왔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황을 끊임없이 겪어야 했던 나를 안다면 그 누구도 나에게 무정한 딸이라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정대로 엄마는 금요일에 나의 집에서 나갔다. 집에서 나가 어디로 갔는지 전화해 묻지 않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서도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끝내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이제는 비밀번호를 바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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