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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Oct 12. 2023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

나는 적어도 엄마가 나에게 조금은 미안해하고 있을 줄 알았다. 60년대 생에겐 부모가 자식에게 미안하다 말을 하는 것은 어색한 일일 테니까 말로 뱉지는 못해도 그때의 일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우리는 3년 전 엄마가 나를 주선 업체에 몰래 가입시킨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때 결혼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내가 너한테 안 물어봤었나?”

엄마는 딸의 상처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길을 가다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황당했다. 엄마가 그때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엄마의 무신경했던 행동들을 말해주었다.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엄마가 나를 모욕했던 단어 하나, 상황 하나를 잊은 적이 없었다.

“응 그랬어. 근데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이해해. 엄마도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제는 이해가 좀 되지?”

“아니, 이해 안 되는데? 나는 그래도 네가 속으로는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매체에서 그딴 말을 떠들어대니까 나도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써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힘들어했던 딸을 이해하려는 일말의 시도도 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말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자신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나의 호의에 화를 내는 네가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몰아버리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치가 떨렸다.

생일 선물로 변신로봇을 갖고 싶어 하는 딸에게 바비인형을 쥐어주고는 ‘비싸게 주고 사 왔더니 고마워하기는커녕 가지고 놀지도 않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같이 엄마는 자신의 노력만 알아주기를 바랐다. 원한 적도 없는 바비인형을 들고 엄마가 만족할 때까지 즐거운 척을 해야 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나는 아무 고뇌도 없는 엄마의 천진함이 싫었다.

 

엄마는 우리의 반목을 세대차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넘겨버렸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쇼윈도 모녀인 이유는 엄마가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유물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센터까지 다녀가며 그녀를 미워하지 않으려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헛수고였음을 깨달았다. 어두운 카페에서 아이스 카페라테와 키위주스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다시 엄마가 미워졌다. ‘당분간 엄마를 보지 말아야지’ 자식의 서운함을 알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엄마를 나 혼자 이해하려 애써왔던 것이 허탈했다. 자식의 악에 받친 분노에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의 예민한 기질 탓으로 돌려버리는 그녀의 안일함에 백기를 든다. 그녀와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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