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를 쓰다듬던 두꺼운 손으로 엄마의 뺨을 내리치고 나를 이끌던 발로 엄마를 짓밟았다. 어린 뺨에 뽀뽀를 하던 입으로 엄마에게 ‘신부랑 붙어먹었냐’ 거나 화냥년이라며 고함을 치고 욕을 했다. ‘그런 말을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런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거구나.’ 부모가 가르쳤던 바른말을 쓰라는 교육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아빠는 자식을 아꼈다. 할머니가 장사를 하느라 어린 아빠와 그의 형제들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부인은 집에서 자식들을 챙기기를 바랐다. 하교를 하고 집에 오면 항상 엄마가 있었지만 내가 바란 것은 그녀가 챙겨주는 간식 따위가 아니라 아빠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과 모든 것을 파괴하던 손, 그 모든 폭력이 나를 향한 적은 없지만 나는 아빠가 무서웠다.
아빠는 나를 이기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무례하게 굴어도 그는 그저 허허 웃으며 ‘가시나 되게 까칠하네.’하고 넘겼다. 나는 아빠가 참 좋았는데 불쌍한 엄마를 보고 있으면 아빠가 정말 미웠다. 부모님이 잘 지내는 기간이 한 달을 넘어가면 불안해졌다. ‘싸울 때가 됐는데… ’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때때로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빠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부모의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어렸던 내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을 때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일에 나는 너무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데, 어째서 부모의 불화가 가족 모두에게 직면한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나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도 버렸다. ‘화목한 가족’은 내가 영영 가질 수 없는 신기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족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기대에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가족과 멀어지는 것을 택해야 했다. 가족에서 분리되어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면서 깨달았다. 진작 월세방이라도 구해 나왔어야 했다는 걸. 폭력이 스며 있던 집에서 왜 이렇게 미련하게 버텼던 것일까? 공포에 떨던 공간에서 왜 빨리 나를 건져 올리지 않고 방치했던 것일까? 과거를 상기시키고 불안을 전염시키는 사람들로부터, 쉽게 남을 욕하고 가감 없이 부정적인 기분을 표출하는 사람들로부터 진작에 멀어져야 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려면 나는 정말로 혼자서 서 있어야 한다. 폭력의 상황 가운데 나를 버려뒀던 부모에게서 떨어져 그들을 남처럼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했다. 가족이라고 애틋해하지도 말고 가엾어하지도 말고. 미워하면 미워하는 마음으로, 원망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망가져 버린 채 자라지 못한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야 했다. 그것이 홀로서기의 출발점이었다.
누군가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는 엄마.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만큼은 기꺼이 져주기를 택하는 아버지. 나는 그 한심하고 미성숙한 이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예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