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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07. 2024

돈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엄마가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탓에 대학생이던 나는 매달 용돈 20만 원을 받고도 통장 잔고를 200만 원 밑으로 떨어뜨려 본 일이 없다. 돈이 없으면 괜스레 불안해졌다.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구제 옷을 골라 사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더욱 안정적으로 돈을 모았다. 비록 적은 월급이었지만 내 소득 수준에 맞는 소비를 했다. 절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치하지 않았다. 명품 가방을 하나 정도 갖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비가 오면 머리에 쓰고 뛸 수 있는 저렴한 가방만 샀고 그마저도 모서리의 가죽이 해질 때까지 들었다.


생각만큼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지원 덕분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매달 생활비를 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노후 준비를 해 놓은 덕에 1인분의 몫만 생각하면 되었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꽤 오랫동안 내 지갑 속에는 회수되지 않은 아빠의 카드가 있었다. 첫 월급을 146만 원을 받고 이가 아파 치과에 갔다가 치료비가 60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돌아왔을 때 아빠는 대신 병원비를 결제해 주었다. 직장인 6년 차가 된 지금, 지갑 속에 아빠의 카드는 없지만 여전히 그는 내 차의 보험료를 지불해 주고 있다. 부모님 덕에 나에게 예상치 못한 지출은 없었고 돈이 많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백화점 1층에서 가방 몇 개만 사면 없어질 돈이었지만 그것을 살 깜냥이 되지 않으니 쓸 일도 없는 돈이 통장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독립을 하려 보니 내가 가진 것은 초라한 푼돈이었다. 돈이 분명히 많았는데,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24평 대의 아파트 분양가는 4억 원대였고 여전히 실수령액이 200만 원도 안 되는 나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른바 영끌을 해도 감당하지 못할 돈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는 내내 억울하고 분했다. 삼만 원짜리 원피스 하나도 선뜻 사지 못해서 장바구니에 넣어둔 옷만 몇십 장인데도 돈을 이것밖에 못 모았다니! 나름 알뜰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나에겐 그럴듯한 집 하나 살 돈이 없이 없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허름한 집을 보여 주면 여기서 살아갈 날이 막막해 화가 났다가 근사한 집을 보여주면 모아둔 돈이 턱없이 부족해 심통이 났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거야?’ 치졸하게도 내게 상속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남 탓을 하는 내가 못나서 짜증이 났다가 살 곳 하나 없는 처지가 낡은 가방만큼이나 구질구질해서 서글펐다. 이 지구에 온전한 내 공간이 하나도 없다니. 정말 너무하다.


돈을 더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주 4일제를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일을 더 하고 싶진 않았다. 내 월급을 보고 있으면 퇴근시간을 1분이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솟구친다. 겸직 금지의 의무가 있어 다른 일을  하지도 못한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이나 못한다는 욕도 듣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싶다. 내 삶의 의미는 회사 밖에 있으니 그저 절약을 하거나 재테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이버의 쇼핑 탭을 보다가 할인을 하길래 견물생심이 생겨 동생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야 이거 60퍼센트나 세일해. 완전 이득 아니야?”

“어 이쁘네. 근데 누나, 안 사면 0원이야”

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도 할인율이 높으면 관심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동생의 말을 생각한다. ‘누나, 안사면 0원이야.’ 지나가다 창고 정리, 마감 세일 문구를 본다. ‘안 사면 0원이야.’ 블랙프라이데이다. ‘안 사면 0원이야’ 올리브영 세일 기간이다. ‘안사면 0원이야.’

아아악! 그럼 나는 도대체 언제 사냐고!

그래. 영영 물건을 안 사고 살 수는 없다. 그때에는 곤도 마리에의 책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조금 바꾸어 생각한다. ‘설레지 않으면 버릴 필요도 없게 그냥  사지 마시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일주일을 기다려본다. 대부분은 내가 무슨 물건을 담아 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리면 그때에는 기분 좋게 사는 거다. 맥시멀 리스트인 나는 허리띠를 졸라매듯 절약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소비를 줄여나간다.


단순히 보복성 소비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주말 출근을 한 날에는 꼭 퇴근길에 보셋집의 옷 가게를 지나치지 못한다. 주말까지 바쳐가며 번 돈 보다 홧김에 쓴 돈이 더 많다. 어이가 없다. 마음이 허해서 무엇이라도 채워 넣고 싶은 날엔 뭘 사든 상관없이 그저 돈을 쓰기만 해도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런 날에 이제 나는 우량주를 산다. 매수를 걸어 놓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렇게 사 둔 주식이 떨어지거나 오르기도 하지만 우량주이니 망할 걱정은 없고 때에 맞춰 배당금도 챙겨주니 한 해가 지나면 보풀이 일어나는 싸구려 니트보다는 낫다고 자위한다.


이렇게 모아서 언제쯤 집을 살 수 있을까?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니 결혼을 하면 훨씬 더 집을 쉽게 사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이서 돈을 모아 왔다면 적어도 내가 가진 것의 두 배는 될 테고 대출을 갚아도 나보다 몇 배는 빨리 갚을 테니까. 그리고 자식까지 있다면 청약 가점도 훨씬 더 높겠지. 자산의 크기가 클수록 불어나는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나는 혼자 끙끙거리고 있으니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혼자서 용을 써봤자 애만 쓰고 되는 게 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서 임대해 주는 행복주택은 턱없이 작아서 그곳에서 산다면 일말의 행복도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다. 더 이상 작은 집은 사양하고 싶다.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이나 두 명이 누우면 가득 차는 자취방 따위는 20대로 충분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주거 환경은 중요하다. 나는 안전하고 깨끗하며 집 안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크기의 집을 가지고 싶다. 온갖 짐들을 구겨 넣을 자리도 부족한 10평 이내의 임대 주택 말고 삶의 질을 상승시킬 24평의 신축 아파트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시발 비용으로 사뒀던 주식에는 물려있고 티끌을 모아도 티끌이니 나는 이제 어쩌면 좋을까? 혼자서도 잘 사는 건 쉽지가 않다. 인생,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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