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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롱썸 Aug 29. 2016

동네 시장에서 꽃을 사다

디퓨저는 뭔가 부족해

2시간 시차를 우습게 봤다. 그리고 그 우스운 시차가 아직도 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밤 10, 11시가 되면 몸이 자라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하고, 아침 6시도 되기 전에 더워서인지 잠자리가 불편해서인지 꼭 한 번쯤 잠에서 깬다. 한국에서 12시, 1시쯤 자서 주말에도 8시에는 꼭 한번 눈 떠주는 일을 여기에서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정확한 시각에. 몸은 생각보다 무섭게 이 전의 나를 기억하고 있고, 생각보다 더디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간다. 


물갈이 같은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뱃 속은 한국에서만큼 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손가락이 또 문제가 되었다. 낯선 곳에 적응하는 나만의, 혹은 나의 손가락만의 방식인가 보다. 다행히 작년 이맘때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 받은 연고와 항생제를 고스란히 들고 온 덕에, 적당히 응급처치를 하여 상당히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완벽히 괜찮아지지는 않았다. 어제는 까먹고 연고도 안 발랐는데, 별 일 없겠지?


아무튼, 아직도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알람을 맞춰놓은 것보다 한 시간쯤 일찍 깨어 아침 시장 구경을 결심하게 되었다. 혹시나 너무 일찍 나가면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지 않았을까 봐 7시가 넘어서 슬슬 나갔는데, 괜한 걱정이라는 걸 바로 알게 되었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시장은 우리 전통 시장과 큰 차이가 없는 듯했다. 시장 상인들은 각자마다 가져온 보따리를 펼쳐놓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온갖 과일과 야채가 있었는데, 롯데마트에서 보던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신선함이 느껴졌다. 금방 딴 것 같이 아삭해 보이는 상추, 파스타 해 먹으면 딱일 것 같은 홈이 잘 패인 단단한 토마토, 잘 익은 사과 등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그 좁은 길 사이로도 오토바이가 다녔고, 오토바이에서 채 내리지 않고도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 피지도 않은 꽃의 싱싱한 봉우리를 보자 꽃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꽃병부터 사야 하는데..' 하던 참에 그릇이며 컵이며 식기를 파는 상인을 찾았고,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며 투명한 꽃병을 찾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알겠다며 어디론가 뛰어간 청년이 서로 다른 크기의 꽃병 두 개를 가지고 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크고, 묵직한 꽃병이었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 70.000동(3500원)에 구입하였다. 아직도 이곳의 물가에 대한 감이 없어, 깎아서 사긴 했으나 뭔가 덤터기를 씌었을 수 있겠단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는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격이라면 일단 오케이' 하며 적당히 사고 있다. 원래 부르는 가격도 싸지만, 재미를 위해 적당히 흥정하면서. 


원래는 흰색 꽃을 사고 싶었다. 백합 같은 느낌의. 그런데 이 꽃이 하얀색이냐고 묻는 것도 왜 이리 복잡한 것인지... 구글 번역기를 주섬주섬 꺼내 white를 입력하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는 듯했다. 아마도 노란색이라고 하였겠지. 봉우리마다 배 포장지 같은 것이 씌워져 있어, 꽃이 어떤 색인지 보기는 쉽지 않았다. 집에 와서 벗겨보니 노란빛이었다. 100.000동(오천 원)쯤 부르길래 "그렇게 비싸요?"라고 우리말로 답하며 깎아달라고 하여 결국 2000원 정도 주고 샀다. 


집에 들어와서 생각해보니 나한테는 꽃줄기를 끊을 만큼 충분히 큰 가위가 없었다. 양 날이 내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 되는 작은 가위만을 가지고 있었다. 적당히 과도로 꽃병에 꽂을 만한 높이로 줄기를 썰어 꽂아 놓으니 제법 만족스러웠다. 


서울에서 나를 위해 꽃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꽃이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냈던 것도 있고, 시든 꽃을 내 손으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꽃도 싸고, 나 대신 시든 꽃을 버려줄 사람도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와서 청소해주시는 분이 나 대신 꽃의 죽음을 책임져 주시겠지.' 하고 생각하니 무책임한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앞으로 자주 꽃을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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