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롱썸 Sep 09. 2016

베트남 커피 한잔 할까?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에 길들여진 입맛, 베트남 커피에 물들다

커피는 어딜 가나 포기할 수 없다.  4개월 간 타지 생활을 위해 고작 캐리어 하나 끌고 갈 때에도,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할 때에도 원두 한 봉지와 그 원두를 어떻게든 내려마실 수 있는 무언가를 챙겨갔다. 모카포트를 챙겨가기도 하고, 더치 기구를 들고 가기도 하고, 한 번은 정말 드립 필터부터 드리퍼, 주전자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기도 하였다. 


낯선 공간에 적응하는 것은 낯선 커피에 적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미국이나 유럽은 모르겠지만, 동남아 국가에서 스타벅스가 아닌 현지 커피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꽤 고된 일이었다. 2L 페트병만한 크기의 주전자에 아주 커다랗게 늘어진 융드리퍼를 얹고 그 안에서 몇십 분이고 원두를 담가 놓는 싱가포르 커피에는 끝내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커피에는 어쩌면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로부스타 원두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강배전으로 볶은 원두를 진-하게 내리고, 설탕이 아닌 연유를 커피 밑에 깔아주는 것이 꽤나 맛있다. 


서울에 있으면서 네슬레 카페에 자주 가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즐겨먹던 '카페 봉봉'이라는 메뉴가 베트남 커피의 에스프레소 버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스페인쪽(?)에서 먹는 방식이라고 들었던 것 같긴 하다) 카페 봉봉은 항상 투명한 에스프레소 잔에 담겨 나왔는데, 끈덕하고 두껍게 깔린 연유와 쌉쌀 짭짤한 에스프레소가 층층이 쌓여있는 것이 예뻐서 더욱 좋았다. 강렬하게 쓰고 신 커피가 인상을 찌푸리게 할 때쯤 그것만큼이나 강렬한 연유 단맛이 느껴지는 이 커피는 배는 불러도 달달한 디저트가 땡길 때 딱이었다. 


카페 봉봉 (구글 이미지)

싱가포르 커피에 적응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연유 때문이었다. 그곳의 연유는 한국에서 흔히 쓰는 연유와는 다르게 묽어서 커피와 쉽게 섞였고, 항상 저어서 주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커피와 연유를 분리시켜서 먹을 수 없었다. 문제는 연유 특유의 텁텁함이었다. 연유가 섞인 커피를 마시는 내내 입의 텁텁함을 가실 수가 없다. 캐러멜 마끼아또 같은 단 커피는 맛은 있지만 잘 마시지 않는데, 시럽 같은 단 것이 커피에 섞였을 때 느껴지는 개운하지 않고 텁텁한 느낌이 싫어서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기 베트남은 커피에 연유를 넣고 저어주지 않는다. 연유는 한국만큼 끈적하지는 않지만, 카페에 따라서는 꽤 무거운 느낌의 연유를 쓰는 곳도 있다. 어제 아침에 마신 콩 카페와 집 근처에 있는(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카페에서 마신 첫 커피는 꽤나 카페 봉봉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래서 연유를 깔고 그 위에 진하게 내린 커피를 얹는 방식 자체는 괜찮다! 괜찮은 정도를 넘어서 좋다. 그러나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은 원두 자체의 맛이다. 로부스타 특유의 향은 그렇다 치고, 그 향을 가리기 위해서 헤이즐럿 같은 향을 입힌 원두는 먹기 힘들 정도다.



vietnam coffee(구글 이미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로부스타의 카페인 함유량이 아라비카에 비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아라비카는 통상적으로 카페인 함량이 1%-1.5%인데 비하여 로부스타는 1.6%-2.7%이라고 한다. 카페인 양과 베트남 커피 양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듯하다. 베트남 커피는 적어서 다 마시고도 공허하게 빨대만 씹은 적이 허다했다. 베트남 커피를 아메리카노만큼 마시면 심장박동이 요동칠지도 모르겠다. 현지 카페에서 아직까지 커피 사이즈를 고를 수 있는 것도 보지 못한 것 같다.(모던한 느낌의 카페는 어떨지 모르겠다)


요즘 사무실에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원두로 베트남식 커피를 내려마시곤 한다. 한국 사무실에서 커피머신으로 내리던 커피에는 비할 바가 아니고, 웬만한 한국에서 먹던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맛있다. 더치 기구로 원두를 내려마실 때에는 항상 맛있는 커피에 대한 갈증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아메리카노 같은 건 생각도 안 난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베트남 커피를 내려먹을 것 같다. 핸드드립만큼 매끈하고 깔끔한 맛은 물론 아니지만, 핸드드립이나 모카포트보다 말도 못 하게 간단하다. 그리고 맛있다!


베트남 커피 말고도 커피를 마시는 공간 자체도 흥미로워 보인다. 다음에는 커피가 아닌 카페에 대해서 써봐야지.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 베트남에 온지 두 달이 넘어서야 현지 유명 프랜차이즈인 '하이랜드 커피'에 갔다. 이 곳은 커피 사이즈 선택이 가능하다. 보통의 현지 카페와는 다르게, '신속함'을 위해 베트남식으로 내린 커피가 항상 내려져 준비되어 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가장 작은 사이즈의 커피는 정말 적다. 설마 다 끝난 건가 싶어서 다시한번 힘껏 빨대를 빨아볼 정도.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 베트남 음식점에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