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도움을 줄 수도, 내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절박함에 관하여
내가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3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빠른 나이에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다. 회사를 책임지는 입장이 되었고, 30명의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책도 몇 권 펴냈다. 대부분 은행 소유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우리 명의의 집도 가졌다. 지금에서야 나와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당신 정도면 나름 괜찮은 삶 아니냐"라고 말한다.
30대 중반에 특별히 부족한 것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 누군가 보기에 서른 다섯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절박함을 고민한다.
성과를 만들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자 동기부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를 이끈 것은 8할이, 아니 9할이 '절박함'이었다. 아무런 기반과 지원 없이 시작했기에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은 스물넷부터 지금까지 내 삶을 가득 채웠다. 절박했다.
서울과 전주를 매일 고속버스와 KTX로 출퇴근했고, 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만취한 상태로 고속버스에 올랐고, 하루 두 시간도 채 못자는 시간도 많았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헀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생각보다 빨리,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회사도 커지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조금은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뒤를 돌아봤다. 절박함을 연료로 달리기만 했던 내 모습에 거울을 비춰봤다. 충격적이었다. 내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내 삶을 쥐어짜서 절박함을 억지로 만들고 있었다"
절박함은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 조차 사치로 느낀 탓에 속 시원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술 친구 한 명 없었고, 누군가를 만날 시간에 하나라도 더 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마음을 나눌 친구도, 모임도 없었다. 친구는 커녕 나 자신도 들여다 볼 시간조차 없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불안했고, 겨우 조직을 꾸려 리더의 역할을 맡아야 할 시간이 되자 실무를 손에 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절박함을 동력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막상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자 절박함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을 쥐어짜서 절박함을 억지로 만들고 있었다.
"절박함이 당신을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절박함은 내 삶에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직업적 성취, 사회적 위치, 명성, 경제적 이득까지 많은 것을 주었다. 전주에서 서울로, 1인 기업에서 30명 기업으로. 이 모든 성취의 시작은 내 속에 내재된 그것에서부터였다.
그러나 나를 망치고 있는 것 또한 절박함이었다. 매 순간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우며 남을 믿기보다 스스로를 믿고, 조직보다 개인이 우선되고 있었다. 친구보다 일, 가족보다 회사, 나보다 고객이 앞서 있었고 행복보다 성취를 우선시 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전보다 덜 중요해진 절박함의 빈자리는 불안과 근심으로 채웠고,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절박함의 그늘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내 절박함의 그늘을 마주하겠다"
아직 나는 절박함의 그늘을 벗어날 답을 찾지 못헀다.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성공과 좌절의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되었기에 이것을 마냥 밀쳐낼수도, 고스란히 안고 갈 수도 없다. 그저 내 안의 절박함이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스러운것은 절박함을 인식하는 것이 조금씩 변화를 일구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 불안과 초조의 원인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다루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기도 하고, 행동적으로, 혹은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마인드셋을 고치려 노력해보고도 있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절박함 역시 내 삶의 한 부분인만큼 나는 이것을 어떻게 다뤄나갈지에 대해 고민할 지언정 완전히 없애거나 가득 채울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절박함을 성공을 위한 연료로 쓸 것이 아니라 내 행복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써야할 듯 싶다. 절박함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