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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 겨울 Feb 15. 2019

아픈 기억도 추억이다

위로의 맛, 굴전 & 굴국

친정아버지의 생신이 음력 12월이었는데, 아버지 생신 때면 어머니는 항상 생굴을 밥상에 올리셨다. 그 시절이라고 해서 굴이 아주 비싼 식재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는 왜 항상 아버지의 생신상에 생굴을 올리셨을까? 지금에 와서 추측해보면 고향이 내륙 지역이었던 어머니에게는 싱싱한 생굴이야말로 일 년에 한 번 먹어보기 힘든 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몸에 습관처럼 남아서 잘살게 된 후에도 선뜻 사 먹게 되지 않는 음식이 바로 굴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나는 1월에 굴을 보면 꼭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

마트에 굴이 싱싱하게 나와 있기에 얼른 구입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밥상을 차려보기로 했다. 고기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해산물 밥상을 말이다. 원래 해 먹고 싶었던 음식은 굴밥이었는데, 흰쌀밥을 좋아하는 남편을 고려해서 그냥 국과 반찬으로 만들었다. 내 위주로 차린 밥상이지만 이 정도는 배려를 해준 것이다.


해산물 밥상


굴전은 정말 만들기 쉬우면서도 늘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음식이다. 씻어서 물기를 살짝 뺀 굴에 가볍게 전분을 묻혔다. 그리고 튀김가루에 홍고추를 잘게 다져 넣어서 묽은 반죽을 만들었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묽은 반죽옷을 입힌 굴을 지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굴전과 같이 원재료의 향이 좋은 음식은 본연의 향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가급적 양념장에 찍어 먹지 않는다. 반죽에 소금 간을 적당하게 할 수도 있긴 한데, 평소 간간하게 먹는 터라 굴전만큼은 가급적 그냥 먹으려고 한다. 간이 너무 딱 맞으면 또 굴전을 맛으로만 먹지 향으로 먹지 않게 된다는, 과학적이진 않지만 나만의 미식 철학도 있다. 하지만 식구들을 위해서는 양조간장, 참기름, 깨소금을 섞은 양념장을 곁들여서 내주었다. 


굴전


맑게 끓여서 시원한 굴국은 다시마 우린 물에 무와 양파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굴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까나리액젓과 조선간장으로 간한 것이다. 조선간장으로만 간해도 되는데 우리 집 조선간장이 색과 농도가 너무 진해서 까나리액젓과 반반 섞었다. 편 썬 마늘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굴 향을 즐기려면 마늘은 안 넣어도 그만이다. 역시 식성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마지막에 홍고추와 부추를 넣었다. 부추는 작년에 텃밭에서 수확한 것을 씻어서 잘게 썬 다음 냉동 보관한 것이다. 수확량이 많을 때 잘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겨우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먹을 수 있어서 편하다. 국에 한 줌 넣고자 부추 한 단을 사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부추는 재첩이나 조갯국 등 맑은 국에 넣으면 향이 더해져 국물 맛이 좋아지는 것 같다. 나는 청양고추를 팍팍 썰어 넣어서 칼칼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매운 것을 싫어하는 식구들의 식성에 따라 홍고추 한두 개만 썰어 넣고 마무리했다.


굴국


김무침은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반찬이다. 넉넉하게 만들어서 내는데도 항상 바닥을 드러낸다. 고소한 참기름을 넉넉히 넣어서 더 잘 먹는 것 같다. 나는 김가루를 구입해서 만드는데, 일반 조미김을 잘게 찢어서 만들어도 된다. 눅눅해진 김이 처치 곤란일 때 만들어 먹기 좋다.

파래무침은 한라봉즙을 조금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들어보았다. 한라봉이 있으면 한라봉즙을 넣고, 귤이 있으면 귤즙을 넣고, 아무것도 없으면 식초를 조금 넣는다. 그때그때 만드는 방법이 다르고, 맛도 다르다. 어느 때는 맛있고, 어느 때는 별로고 그렇다. 씻은 뒤 물기를 꼭 짠 파래에 소금과 설탕으로 절인 무채와 다진 마늘, 한라봉즙, 설탕 약간, 까나리액젓, 부순 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남편이 신맛을 싫어해서 식초를 잘 안 쓰는 편인데, 식초를 조금 넣어주면 더 새콤할 것 같다.


김무침과 파래무침


김장할 때 남은 양념에 대충 버무려서 김치냉장고에 툭 넣어두었던 섞박지를 꺼내보았다. 경상도 김치는 젓갈을 많이 넣어서 금방 삭고, 익으면 톡 쏘는 맛이 난다. 경상도식으로 멸치나 갈치, 황석어 등의 육젓을 듬뿍 넣은 양념에 버무린 섞박지는 새우젓을 듬뿍 넣은 양념에 버무린 섞박지에 비해서 시원한 맛은 덜하지만 깊은 맛이 난다. 그리고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 시어머니가 담그신 충청도 스타일의 동치미도 냈다. 


섞박지와 동치미


굴 철이 되면 이맘때가 ‘아버지 생신이었는데.’ 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IMF 등 많은 일을 겪으며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친정어머니와 나 둘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셨지만 내게는 참 다정하고 푸근한 아빠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음식을 보면 아버지 생각도 나고, 천진난만했던 내 어린 시절도 떠오른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가족 모두가 행복하려면 부모부터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칠 때는 아이들 얼굴을 보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오늘의 식단>

-뜨끈하고 시원한 굴국

-겉은 바삭 안은 촉촉한 굴전

-실파김무침과 파래무침

-톡 쏘는 섞박지와 동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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