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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Apr 07. 2022

기록이 없으면 사랑도 왜곡된다 1

물증이 있어야 싸움이 끝나는 논쟁

#그 남자의 혼잣말


5개월 동안 한 사람을 만났다.

 몇 번이나 만났을까.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왜 횟수도 몇 번 안되는데 그것마저 기억이 잘 안 나는지. 

횟수가 중요하진 않지. 

그동안 얘기하고,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그렇게 서로의 이성을 견주고.

뭐, 좋았다고나 할까.


좋았다.

뭔가, 강요하지 않아서.

뭔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뭔가, 쓸데없는 썰렁한 농담까지 통하는 것 같아서.

 
공통점

그 사람을 만나러 가던 어느 날

버스 창 밖 승용차에 붙어있던 이니셜을 본 적이 있다.


" T.J ♥ D.Y  "


흠. 그러고 보니, 나랑 그 사람의 이니셜이 같았다.

초등학교도 같았고, 별자리도 같은 사수자리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아... 뭐지... 이 불길한 기분..'

왠지 억지로 꾸며놓은 것 같은 느낌에, 왠지 모를 불길함이 들었었던 것 같았지만

'그 때문인지 오히려 왠지 알기 쉬웠던 건 아닐까?'


사랑이 무엇일까? 

정말이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었지만 뭔가 결론이 나오는 듯싶다가도


 '글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누군가 말하더라.  명쾌한 정답만을 찾는 것이 공대생의 고질병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 일까나.

계속 생각나게 하는 사람.

뭔가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

말하고 싶은 사람.

느끼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

 
'왜 이렇게 그리운 걸까...'


그 사람의 달라진 눈빛을 느끼고

'아 이제 드디어 그리움은 끝이려나~~' 하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나는데...


착각인가? 착각인 거야...

제발, 말해줘!


자기는 표현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나 또한 어려운 걸 너무나도 절실히 느낀다.

가슴속 가장 여린 부분이 아니던가.

그런 부분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렵다.


"표현이 그렇게나 힘들다면, 내가 보고 싶을 때, 

그냥 문자로 '1'만 간단히 보내. 그럼 내가 알아듣을게."

숫자로 된 어떤 문자도 받지는 못했다.


'1' 도

'2' 도


난 그것도 못하는 바보에게 방법을 알려준 게 아닌데

내 핸드폰에 저장된 그 사람의 90통의 문자들 중에 찾는 단어는 없다.


'그러자~', '그래~', 'ㅇㅇ' 이란 단어보단


'좋아!'라는 단어를 원했던 것 같다.


지우지 못한 중간중간 다른 문자와 섞여, 현재까지 99 통인 줄로 착각한 것이 웃기네.

99 통이면 더 웃겼으려나.

그깟 숫자 놀이 훗날 술자리 안주 밖에 안될 것을.


또다시 그리움이 느껴진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것을.

문득 숫자 '1'을 가득 채워 문자를 날려봤는데

무반응이라 더 민망하다.


"나 며칠 전부터 꼭 먹고 싶은 게 있어. 이번 연휴 때 꼭 먹으러 가자!"

"이건 다른 남자들하고 먹을 수가 없어! 스파게티거든! 남자들끼리 어떻게 가서 먹냐? 딴사람들 시선이 두렵다."


뭐. 가긴 갔지만, 다른 친구랑 가게 될 줄이야.

내가 이성친구가 가능하다고  믿게 해 준, 가끔 영화나 느끼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수다 떨고, 험담을 즐기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말벗이다.

회사 입사 때, 누군가가 "스트레스 해소는 뭘로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친한 이성 친구랑 수다요!  해보셨어요? 안 해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라고 답할 뻔할 정도로 내게는 중요한 부분의 친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실컷 외치고 기분이 풀린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친구가 충고를 한다.


그만하라고.


"야, 뭐 너네 한 것도 없잖아."

그런 건가. 그래서 더 그리웠었나. 가슴이 좀 아리다.  역시 여자의 충고는 왜 이리도 냉정 한 건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서로가 너무 자기 자신의 생활에 빠져 있다는 것.


나도 내가 너무 바빠.

너도 네가 너무 바빠.

어차피  더 가까워지면 그런 것에 더 서로가 그리워하지 않을까.


나이라는 게 무섭다. 무뎌진다.

어렸을 적에는 울적할 때 눈물이라도 살짝 흘려보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다 말라버린 건가.

도망치는 거다. 도망가자.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아.

지쳐버린 것 같아 무서워


그래도 

한 일주일 정도는 좋았던 것 같아.

 그만하자고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뭘 그만하자는 건지도 왠지 정확하게 꼬집어 내기 힘들었다.

왠지 시작도 안 하고 끝내는 것 같다.

'그래서 더 힘들구나....'


그렇게나 그동안 많이 떠들었는데,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나 많았나 보다.

너무나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와서 뱉고 뱉고, 또 뱉고.

그렇게나 서운했었나, 그리도 미웠었나.

 
미안.


"누군가는 말이지 귀에다가 '사랑해'라고 말해줘야 알 때가 있어"

"자기 맘을 알아주기란 쉽지 않거든 그래서 말해줘야 해.."

"예전엔 몰랐어. 아~ 나는 이렇게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데 그게 안 보이냐? 꼭 말해야 아냐! 

라고 화도 냈는데..."

'역시 사랑은 말해줘야 했었나...'

이렇게 나 역시 배우게 되네. 또 한 가지 값지게 배우게 되네.

앞으로는 더 열심히 사랑할 것!

웅! 열심히!


 2008.10.09  <<미니홈피>> 글 중에서 발췌 
 



미니홈피가 다시 열렸다. 반쪽 추억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내게는 청춘의 기록이 고스란히 저장된 곳이다. 기억은 시간과 함께 왜곡되고 재편집된다. 하지만 글은 언제든지 순간 이동이 가능하며 그날의 감정이 그대로 재현된다. 만약 이 글이 없었다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우리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남자이야기 #혼잣말 #미니홈피 #추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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