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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 좋아하는 아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by 이보소

어렸을 적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당시는 형제 남매들이 즐비한 때였고 공교롭게도 한두 살 차이 나는 아이들이 한 층에 모여 있었다. 기억으로는 1001호의 동생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동생과 내가 1001호 집에 놀러 가기도 했던, 집 앞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혹은 숨바꼭질을 했던, 그런 낭만의 시절이 있었다. 나이대가 비슷한 자녀들이 한 층에 모여 있으니 엄마들 또한 관계가 돈독했다. 시의 엄마들이 현재까지도 모임을 가지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에 대한 반증이다. 그리하여 엄마의 입을 통해 여전히 10층 아이들의 현황을 듣곤 하는데 3세 남아와 본가로 놀러 갔던 날, 엄마는 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1001호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항상 냄새를 맡았어. 밥도 킁킁킁. 반찬도 킁킁킁. 그래서 엄마가 1001호한테 뭐라고 했지. 왜 그리 냄새를 맡냐고. 좋지 않은 버릇이라고."

그랬다. 그러했는데. 좋지 않은 버릇이라고 비난했던 그 행동을 말이다.


손주가 하기 시작했다.

배변훈련의 막바지에 접어든 2025년의 어느 때부터였고 엄마의 입장에서는 약 삼십 년 전의 일화가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어린이집은 아기의 사회화 부분에서 필요한 곳인데 그 과정 속에서 발현된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냄새 맡기였다. 언젠가부터 응가를 하고 나면 조그만 손으로 똥꼬냄새를 맡길래 누가 가르쳐줬냐 하니 어린이집의 xx 이를 따라 하는 거라 했다. 냄새 맡기라. 어렸을 적 옆 집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와 밥을 먹을 때 음식 냄새를 맡던 장면과 오버랩이 되었다. 그 오버랩은 아직도 회자하는 엄마가 극도로 싫어하는 행동이기도 했고.


엄마의가 혐오하는 행동을 손주가 한다면?

엄마의 반응이 궁금했다. 내로남불이냐 대쪽 같은 심판이냐의 선택 문제. 문제의 답이 궁금해 본가를 찾아가 손주의 냄새 맡기 쇼를 보여드렸다. 결과는 아주 싱겁게도 내로남불의 승리. 껄껄껄 웃으면서 냄새를 맡는 조그만 손이 귀엽다며 손주에게는 한없이 큰 아량을 베푸는 여사님. 어쨌거나 아기의 냄새 맡는 모습이 나 또한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아 집에 돌아와 아기에게 왜 냄새를 맡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기가 하는 말.

"ㅇㅇ이는 냄새를 좋아하는 거야."

그렇다. 어른의 눈에는 냄새 맡기였지만 아기는 냄새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한창 신날 나이. 휴지 하나로 여러 동물을 만들며 한참을 노는 아이에게 주위의 냄새들은 재밌는 향기들이었다. 세상의 냄새들이 좋은 아기. 아기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 중 하나로 냄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했던 다짐. 아기의 생각으로 대화를 하자라는 초심이 다시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냄새를 좋아하는 아이.

아기에게 세상의 행복하고 즐거운 냄새를 많이 맡게 해 주어야겠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기가 세상의 좋은 냄새들을 맡으며 세상 참 살만하다고 감사함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곰에게서는 어떠한 냄새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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