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배변훈련을 한 지 15개월째. 이제는 직접 소변을 누고 옷을 올리고(팬티와 바지가 겹쳐지는 형태지만) 응가가 마렵다고 알려주고(똥이라는 단어가 부끄러운지 배가 아프다 한다) 볼 일을 다 보면 직접 휴지로 똥꼬를 닦기도 한다(손이 짧아 정확한 조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소변 실수는 있지만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완벽한 배변 활동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고 있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만큼 아기의 행동과 표현력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령,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하고 싶다!"라고 하거나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우는 시늉"을 한다. 남자아이의 거침인지는 모르겠지만 태권도도 팔로 하는 앞지르기뿐만 아니라 팔꿈치와 머리 공격을 추가하며 전사의 후예 마냥 무서워 보이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 때는 응당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주어야 한다)
느닷없이 하는 사랑 표현도 점점 늘어나는데, 불쑥 건네는 사랑의 말들은 행복 엔도르핀이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다음은 만 3세 아들의 사랑 표현.
"책 읽어줘서 고마워"
"운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랑 잔디밭에 같이 가서 좋았어"
"엄마 아빠랑 행복한 시간 보내서 좋았어"
"나는 아빠가 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조그만 손가락을 동그랗게 하며)"오케오케"
(냄새를 맡고 조그만 엄지를 치켜세우며)"굿"
(너는 왜 이렇게 귀여워?)"엄마 아들로 태어나서"
(잠들기 전 품 안에 안겨 있을 때)"아빠 자동차집(카라반)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조그만 입에서 또박또박 나오는 단어들이 합쳐지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 아기를 키워본 자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이다. 집에서 따로 알려주지 않았는데 새로운 말과 행동이 튀어 나오는 걸 보면 어린이집의 힘을 느끼곤 한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정든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기존 반의 정원 부족으로 월반을 통해 어린이집을 새로 시작했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한 살 많은 형과 누나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아기. 개월수가 앞선 아이들과 함께 해서일까. 새로운 어린이집을 다니고부터는 말의 표현들이 훨씬 다채로워졌다. 그럴싸한 이유가 동반되니 반박하기도 어렵기도 하고 어쩔 때는 아기의 말이 백번 맞기도 하다. 나름의 사회생활을 잘 적응해 내는 아기가 대견할 뿐이다.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정도로 수준 높은 대화를 하고 있는 요즘. 의사소통이 되다 보니 아기와 대화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주말 아침 조그만 손으로 나를 방으로 끌어들이며 "아빠 같이 놀자"라고 하면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공룡과 동물 친구들이 되어 대화를 나누면 아기는 신이 나서 "푸~ 쿠~ 콰" 소리를 내며 놀이에 빠진다. 별 것 아닌 놀이인데도 즐거움에 빠진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많이 행복해진다. 행복한 시간을 겪을 수 있게 해 준 아기에게 감사하다.
놀이터에서 심취하여 놀다가 소변 실수를 한 오늘이지만 이제는 어쩌다 한 번의 실수이기에, 사실상 배변훈련은 완성이 되었다고 종지부를 지으려 한다. 어느덧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준비해야 할 나이. 소리도 없이 시간이 이렇게까지나 흘러버렸다. 아마도 인생사 귀여움의 최대치도 이 시기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배변 훈련이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다 보니 귀여움의 한도도 다다른 듯한 슬픈 느낌. 옹알이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모습도 예전이 되었고 이제는 친구가 더 좋아질 시간이 더 임박한 것 같다. 부디 지금까지의 행복한 시간들이 아기에게도 좋은 정서로 이어지기를. 행복의 순간이 모두 기억에 남진 않더라라도 낯설지 않은 아빠로 계속 남고 싶은 마음이 기저귀와 영원히 이별하는 아쉬운 시점에 품어보는 자그마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