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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할아버지와 번개토대왕

덕분에 배웁니다

by 이보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려 뚜껑이 열릴까 싶은데도 한도 초과 귀여움의 급랭 버튼을 누르며 평온 유지에 도가 튼 40개월 인생. 귀여움의 근본은 미숙한 말과 행동인데 만 3세의 진지한 세계 속 자기의 조그만 몸뚱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해 내는 것이 포인트이다. 최근에 푹 빠진 취향을 따라 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아기의 장기간 동물 사랑에서 최근의 최고 애정 캐릭터가 된 간 "옛날 사람". (옛날 사람 전에는 공주를 잠시 거쳤으니 이도 오래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기가 말하는 옛날 사람은 한국의 100명의 위인들을 뜻하는데, 왜 갑자기 옛날 사람이 나타났지 싶어 그 원천을 거슬러 보면 아래와 같다.


연휴에 방문한 강릉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옛 집터(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들어갈 수 없음)

> 여기에는 누가 사냐는 아기의 질문에 옛날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고 답변

> 이해를 돕기 위해 옛날 사람에는 (크리스마스 날) 광화문에서 봤던 이순신 장군과 세종 대왕도 있어라고 일러줌

> 그리하여 차에서 들려준 (그들이 등장하는) 한국의 100명의 위인들 노래


흐름대로 나열하니 아기가 옛날 사람에 급흥미를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심지어 노래에는 이사부, 최무선, 이순신, 광개토대왕 등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장군들도 등장하니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옛날 사람에게 푹 빠지기에는 충분한 요소이다. 신기한 건 위인들을 특징하는 뜻도 모르면서 하나하나 노래를 한다는 것이다. 당근(단군) 할아버지와 번(광)개토대왕처럼 자기만의 방식대로 부르긴 하지만 나도 정확히 모르겠는 위인들을 말할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기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은 순도 99%의 진리이다. 만약 옛날 사람이 사는 문화재를 보지 않았다면, 아기와 일면식이 있는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알려주지 못했다면, 명의 위인들을 알려주지 못했다면(엄청난 옛날 사람들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아기는 꾸준히 동물 사랑을 외쳤을 테다. 도서관에서 빌린 화포 최무선과 만세만세 유관순 책을 계속 읽어달라는 요즘,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한다. 덕분에 주말에 갈 곳이 생겼다. 추운 날 방문했던 광화문을 다시 가서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을 만나야겠다. 위대한 옛날 사람들은 길이길이 남으니, 지금의 너의 삶도 위대함으로 기록되기를. 어떤 의미 있는 하루가 광화문에서 일어날 것만도 같다.


강릉 최상순 가옥.png 바로 앞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던 강릉 최상순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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