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보이 Aug 23. 2017

내가 카페를 하게 되었다.

조금은 무모한 도전.



'음 이정도면 내가 한 번 해볼 수 있지않을까?'



6개월 전, 정확히 내가 아버지한테 했던 말이다.

당시 나는 우리나라 패션 트랜드를 주도하는 스트리트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서 일하면서 의기양양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고, 그 안에서도 어느정도 경력을 쌓고 나와 '카페 창업'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였다. 그러던 중, 부동산을 하시던 부모님의 지인분께서 부모님에게 근처에 카페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고, 어느 날 아버지와 단 둘이 그 카페 근방을 산책하다가 들르게 되었다.


처음 그곳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그랬다. 마치 2010년경 카페베네 스타일이 유행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빈티지함이라는 가면을 쓴 채 근근히 유지되고 있는 듯한 그 장소. 사실 좋게 말해야 빈티지고, 내 느낌에는 그냥 빈티지에서 '지'정도는 빼야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왠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자리에서 묵묵히 5년을 지키고 있던 가게였기 때문에

단골 손님들도 꽤나 있던 편이였고, 커피 맛도 나쁘지 않았었다.  그런 것들을 떠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살아왔지만, 이 멋없는 동네에서 '와 우리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어?' 라는 혁명을 일으켜보고 싶다는 미친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끌렸는지도 모르겠다.(언젠가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그를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때마침 할 일없이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동생을 빌미삼아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시작했고, 어느 날 말 같지도 않게 이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유인 즉슨.


회사에서 내 목이 날아간 것이다.


사실 더 남으려면 꾸역꾸역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회사에 목줄이 잡힌채로 난 이곳에서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라는(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처량한 내 처지가 싫었기 때문에 그냥 박차고 나왔다. 애매한게 지금 생각해보면 잘린 것도 같고, 박차고 나온 것도 같고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요새같은 불경기에 객기아닌 객기를 부렸다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의 선택에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난 나오자마자. 부모님을 미친듯이 설득하기 시작했다. 절박하기도 했고,

이렇게 된거 내 식대로 한 번 살아보자. 혹은 내가 어디까지 올라 갈 수 있는지 보자 등

악에 바친 감정으로 무언가를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퇴사 후, 정확히 한달이라는 짧은 준비기간을 갖고 전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진짜 문제는 커피에 대해 1도 모른다는 것.


시작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커피 문외한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였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벌렁벌렁거리는 가슴을 주체못할 정도의 카페인의 취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었는데, 돌이켜보자면 나는 주로 카페에 가면 일단 달달한 마끼야또나 모카류부터 시켜놓고 보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였던거다. 가끔 커피 맛을 조금 안다는 손님들이 와서 원두나 드립에 대하여 물어보면,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회피하기 일 수 였고, 급격히 작아진 초심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카페의 본질은 공간에 대한 힙스러움이 아니라는 사실.

어찌되었건 카페란 커피를 중심으로 다른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고, 일단 모든 카페는 한 잔의 아메리카노로 평가될 확률이 높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문난 곳을 찾아다니면서 마셔보는 수 밖에 없었다.




열심히 마신다는 표현에 대하여.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커피 맛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라면 찾아가서 미친듯이 보고 마셨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보다는 핸드드립 위주로 마셨는데, 쉽게 분별할 수 없는 원두 고유의 맛을 느끼기 위해 한 모금을 머금고는 30초동안 삼키지 않는다던가, 혼자가서 다른 원두 두 가지를 시켜놓고 번갈아가면서 두 개를 한번에 맛본다던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마셨다. 음료를 가지고 열심히 마신다는 표현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정말 그랬다 열심히 마셨던 거다.


그리고 나갈때면 꼭 그 카페의 시그니쳐 원두를 사가지고 와서 가게에서 한 번 더 내려마시고는 했다.

그래서 일까, 어느덧 한 잔을 못넘어가던 내 카페인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한 잔씩 마셔주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와버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매 달 다른 원산지의 원두를 가게에 들여오면서 드립을 찾는 손님들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거나 추천해주고는 한다. 확실히 처음에 비해 자신감이 붙었달까? 정말 커피를 열심히 마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도 같고.




이제 6개월, 다시 한번 끌어올려야 할 때.


겁없이 개인카페 대열에 합류한지 6개월이다.

6개월동안 나름 열심히 달려온 결과. 정말 운이 좋게도 처음에 계획했던대로 젊은 고객층도 많이 생기고,

어설픈 공간에서 찰칵찰칵 쉴틈없이 아이폰 셔터를 눌러주시는 분들도 생긴 반면, 기존에 있던 나이든 몇몇 고객분들은 언젠가부터 안보이기 시작한 것은 좀 씁쓸하다.

매출에 대해서는 오른 것 같기도하고, 계속해서 같은 수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한 애매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떻다라고 판단하기는 힘들고. 그간 계속해서 그려왔던 카페 관련 작업들이라던가 나름 커피라는 깊은 내공을 지닌 음료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에 여차저차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카페를 인수했을 때 계획 중 하나가, 샵 내부를 계절마다 바뀌는 컨셉스토어 형식의 카페를 보여주고 싶었다. 타고난 미적감각이라고는 생각지는 않으나, 어렸을 적 미대입시 부터 시작해서 줄 곧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놓치않고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비주얼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에 대한 자신은 어느정도 있었다.

하지만, 낮에는 디자인 작업. 저녁에는 서비스업을 겸하면서 주 6일동안 쳇바퀴 굴리듯 일상을 보내면서 일에 대한 열정을 지속시키기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던 것.  어설프게 나마 일에 대한 '완벽주의자 적' 성향이 있었던 지라. 공간이나 디자인 패키지, 인스타그램 등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쉽사리 일을 진행시키기가 어려웠고, 현재는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것 마냥 지지부진한 속도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개월을 조금이나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의 그 의욕은 어느샌가 반으로 줄어든 것 같고, 슬럼프가 찾아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느정도 초심을 찾는 것이 필요한 시기였다.

비행일지와 함께 카페 운영에 대한 글을 꾸준히 개제할 생각인데, 이 두 가지의 글은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의 분위기를 띄고 있을지 모르나, 결국 지향하는 점은 같다는 것을 언젠가 차곡차곡 글들이 쌓이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 열정을 좆아 도전한다는 일이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닌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있지만, 그래도 먼 훗날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도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부터 쓰이는 글들은 무모했지만, 열정적이였던 내 젊은 날의 기록이 될 것이며, 내가 현재를 더욱 값지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창업과 편함과의 상관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