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딩~'
새로운 메일이 왔다. 일하다 보면 수 없이 오는 메일, 기계적으로 열어본다.
'5월 6일로 예정되었던 전사 등산 일정이 그 다음 주로 연기되어...'
아, 그리 욕 먹더니 결국 일정을 바꿨구나. 그러게 왜 샌드위치 데이에 등산이라는 이벤트를 애당초 넣었을까. 그러면 4일 연휴가 생기는건가? 꽤나 기네... 뭐 하지... 외로운 독거노인에게 너무 긴 연휴는 오히려 서러운데...
갑자기 뜬금없이 문득 여행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여행을 갔다 온지 벌써 일년여가 지났다. 생각해보니 당시에 편도 신공으로 인해 나에게는 일본행 땅공 항공 티켓도 한장 있는 상황이다.
가볍게 시작한 생각이 갑자기 커지면서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그래, 여행은 이 들뜸부터 시작되는거지. 잠시 잊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땅콩항공 사이트에 접속해서 채팅을 신청한다. 일등 항공사 답게 채팅으로 무엇이든 가능할거다. 짧은 기다림이 있은 후 상담원과 연결된다.
'저... 일본 가는 표가 한장 있는데, 갈 수 있는 곳이 어딘지요?'
'고객님, 정확한 행선지를 알려주셔야 합니다.'
아, 대한항공이 여행사는 아니지. 내가 무례했다.
'5월 5일에 인천에서 떠나고, 5월 8일에 복귀 가능한 표가 도시가 어디인가요?'
잠시간에 침묵에서 느껴지는 짜증 이후에, 착하디 착한 우리의 상담원님께서 알아봐주겠다고 한다. 미안해요... 정말 어디 갈지 모르겠어요...
도시 서너 곳을 알려준다. 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그래도 잠시 검색이라도 해봐야겠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일단 로그아웃 한다.
한 5분 검색해보지만 뭔가 뭔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언제 여행 갈때 조사하고 갔었나. 에잇, 그냥 진짜 아무데나 가자.
다시 접속하고 채팅을 시도한다. 연결이 성사되고 예약을 하고 싶다고 한다.
'죄송하지만 문의하신 곳은 모두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 아니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연휴가 생긴 우리 회사 사람들이 단체로 표라도 구매한걸까? 생각해보니 보너스항공권이라 운이 안좋으면 이리 순식간에 사라지나보다.
허무해서 멍하니 있는데 문득 일본에서 지금 지진으로 난리난게 떠오른다. 아 맞다, 지진이 있었지. 이게 왜 이제서야 생각날까. 여튼 안간게 잘된건가? 그런데 그럼 표를 순식간에 사간 그 사람들은 뭘까.
그럼 어디를 가지... 길을 잃었다. 이때 내가 격하게 아끼는 사촌동생이 최근에 만났을때 러시아를 간다고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러시아가 생각보다 그리 가깝다던데, 한번 검색이나 해보자.
러시아 하면 모스코바지. 서울에서... 한 6시간 걸리네? 이 기지배 거짓말한건가? 아니 우리 착한 동생이 그럴 리가 없는데...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곳을 쭉 둘러보는데 뭔가 익숙하면서 낯선 도시가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 여기는 2시간 정도면 간다. 그리고 표도 엄청 많다.
뭐하는 곳일까? 아몰랑. 가면 뭔가 있겠지. 어딜 가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가서 무엇을 느끼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채팅 서비스를 통해 물어보니 일본이나 러시아나 마일리지는 같아서 차감 없이 기존 표를 변경 가능하다고 한다. 이래서 다들 대한항공, 대한항공 하나보다. 땅콩만 맛있는게 아니었다. 가는 표는 기존 일본행 표에서 변경하고, 리턴 티켓은 일년동안 차곡차곡 쌓은 마일리지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방콕으로 편도로 끊는다. 이러면 서울 스탑오버로 두장이 생기는 마법의 편도 신공! 방콕은 일년 안에 또 가면 된다.
비행기 표가 생기니 마음이 한결 느긋해진다. 근데 사촌동생이 간다고 했던 곳이 여기랑 같은 곳인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카톡을 열고 물어보니 맞단다. 자기는 5월 2일에 귀국한단다. 내가 떠나기 3일전에 돌아온다. 하, 안 마주쳐서 다행이다.
귀찮은데 게스트하우스까지 예약해버릴까? 사촌동생이 예약한 곳을 한번 물어본다. 에어비엔비에서 찾아보니 도미토리라 하루에 만원이다. 3박에 3만원, 나쁘지 않다. 바로 예약해버린다. 그리고 사촌동생한테 떠날때 술과 음식을 숙소에 내 이름으로 많이 남기고 오라고 전한다.
나라 결정부터 호텔 예약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이 안된다. 원래 여행은 이런거지. 여행에도 스포가 있다고 믿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이런 여행이 늘 즐겁다.
3박4일의 짧은 여행. 한 도시에만 있을거니 또 그리 짧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리 좋아했던 시포나, 자이살메르나 대부분 4일 정도만 있었다. 삶에 조금씩 지쳐가는 지금, 이번 여행은 그래도 잠시 쉼표를 찍게 해줄까.
이번 여행에서도 여행기를 쓸지 말지는 고민이다. 여정이 짧아서 고민이 되긴 하지만 사실 글을 써야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만큼 아마도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글 쓰는 거에 중독되기도 했고 말이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는 지금 30분 동안 지하철과 길에서 이 글을 다 쓰면서도 뭔가 들뜨는 내 자신이 느껴진다. 솔직함을 담기에, 글은 언제나 즐겁다.
어쨌든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주일도, 한달도 아닌 4일 뿐이고,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이름도 계속 햇갈리는 곳이지만 여행은 여행이다. 즐겨보자. 그리고 잠시 잊었던 행복이라는 놈도 다시 좀 끌고 와보자.
그런데 진짜 블라디보스토크는 뭐하는 곳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