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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Sep 05. 2016

달래의 결혼식

의미와 의식 사이

갑자기 친한 후배인 달래한테 카톡이 왔다.


"오빠 9월 3일 토요일에 뭐해요?"


뭐하긴. 토요일이라고 뭐 다를까나.


"아무 약속 없다~ 왜? 한잔 하자고?"


"그럼 제 결혼식에 초대할게요."

이 말과 함께 사진 하나만 띡 보내왔다. 핸드메이드 느낌의 소박한 청첩장이다. 소위 인터넷에서 말이 많은 카톡 청첩장이다. 하지만 얘를 알기에 이 초대장의 값어치를 나는 안다. 정말 선택받은 소수에 내가 들어갔구나.



시간이 흘러 9월 3일이 되고 식장으로 향한다. 고속터미널 성당에서 한다고 한다. 그런데 고속터미널에도 성당이 있던가? 인터넷을 찾아봐도 역시나 잘 안 나온다.


겨우 정보를 찾아 경부선 본건물 10층으로 올라간다. 정말 이런 곳에 성당이 있구나. 터벅터벅 성당을 향해 걸어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성당에서 정신지체 아이들을 가르치며 4년여를 함께 한 애들이다. 정말 식장에 몇 명 안 불렀구나. 가족들 제외하면 친구는 신랑 신부 합해서 20명이 안되어 보인다.  원래 10명을 목표로 했다더니 그래도 꽤나 모인 편이다.


성당 앞에서는 신부가 손수 식객을 맞이하고 있다. 당연히 도우미 따위는 없다. 카메라는 친구들이 찍어준다. 신부 드레스는 15만 원 주고 샀고 머리에 한 티아라는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라고 자랑스레 얘기해준다. 신랑은 한술 더 떠서 선글라스를 끼고 식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화려한 화환도 없고, 호텔의 조명과 호화로운 시설도 없지만 하나 다른 점은 신랑 신부의 여유로운 미소다. 보통 식장에서 느껴지는 신랑 신부의 긴장감이 안 느껴진다. 자기들이 소박하게 직접 초대하고 꾸민 결혼식이라 그럴까? 주인공이 하객이 아닌 이 둘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축의금을 준비해왔는데 내는 곳이 없다. 신부 대기실은 당연히 없으니 신부가 식이 시작하기 전에 직접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린다. 기다리면서 성당을 들어가 보니 정말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다. 작은 성당을 찾다가 이곳까지 온 것 같다. 달래답다고나 할까.


신부님이 좀 늦으신다. 예정된 시간에서 20여분이 지나서야 헐레벌떡 도착하신다. 보통 식이 늦어지면 다음 순서도 있고 해서 불편해지는데 여기는 그런 거 없다. 어차피 이 성당에서 결혼하는 건 달래 커플뿐일 거다. 그리고 모두가 선택받은(?) 친구이기에 다들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신부님이 오시고 식이 시작한다. 신부님은 십 년 전에 성당에서 뵀던 그 신부님이다. 양복 입은 사람도 많이 안 보이지만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니 이들 한 명 한 명이 정말 이들을 축복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미사 중에도 모든 것은 신부와 신랑이 직접 한다. 주례만 달래 친구이고 나머지는 전부 직접 한다.


나는 이제 신을 안 믿지만 자리에 앉아 잠시 기도에 동참한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당신이지만 새로 시작하는 이 부부에게는 정말 축복을 주세요.

식의 메인은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전하는 편지다. 요즘 결혼식장 가면 어렵지 않게 보는 의식이지만, 이 작은 공간에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인지하는 상황에서 하는 서약은 좀 특별하다. 달래가 서약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나도 주책맞게 같이 눈물을 흘린다. 작은 공간이기에 모두 한 마음이다.


식이 끝나고 나서 드레스를 입은 달래가 갑자기 큰 소리로 얘기한다.


"식사는 가족들은 옆에 식당으로, 친구들은 잠시 기다리세요!"


하얀 드레스 입은 신부의 외침에 모두 한바탕 웃음을 짓는다. 마지막 행진도 재껴두려던 달래는 신부님한테 꾸지람을 듣고 신랑과 함께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행진까지 즐겁게 마무리한다.


부모님은 옆에 식당으로 이동하고 달래와 신랑은 우리와 함께 그 옆의 식당으로 향한다. 원래는 식당도 예약 안하려다 했다지 아마?


처음 겪는 상황이 두가지다. 결혼식 이후 식사를 김치찌개로 하는 것도 처음이고, 방금 결혼한 신부가 드레스를 입고 그 김치찌개를 같이 식사하는 것도 처음이다. 스테이크도 아니고 호텔 뷔페도 아니지만 그거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대접 받으려고 온 자리가 아니고 축하하러 온 자리라는걸 모두가 안다.


20명이라고 다 아는 사람은 아니다. 회사에서 온 후배 1명, 2년간 세계여행을 했다는 친구, 친동생 등 나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모두 달래라는 공통사에 뭉친 만큼 금세 친해져서 막걸리 한두 잔을 기울인다.

2차는 고속터미널 지하에 있는 호프집으로 이동한다. 물론 드레스는 입은 상태다. 조금 취한 나는 저 드레스를 벗기 전에 이 신혼부부에게 뭔가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의 동의를 얻은 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일어나서 호프집 앞으로 가서 큰 소리로 얘기한다.


"즐겁게 한잔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오늘 제 후배가 이곳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레스를 입고 여기까지 내려와서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제 드레스를 벗기 전에 마지막 행진을 여기서 하고자 합니다. 많은 박수로 축하해주세요!"


행진곡도 없는 행진이지만 취했는데 어떠하랴. 신랑 신부가 그렇게 호프집에서 행진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잠시 술잔을 내려놓고 진심을 담아 축하해준다. 그렇게 달래의 결혼식, 아니 달래식은 마무리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모든 의식에는 사실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겉의 의식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의 껍데기는 너무 단단하여 안에 무엇에 들었는지를 쉽게 잊어버리게 한다. 의미를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의식에 한번 잠식된 우리는 다시 본질을 찾지 못하고 만다.


사실 화려하다고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의 마음만 확실하다면 나머지는 어차피 다 의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정말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필요 없는 것을 다 쳐내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가끔 최종 자료를 발표할 때 흑백으로 자료를 준비한다고 한다. 화려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정작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우리도 한 번쯤은 흑백의 인생을 살면서 삶의 의미를 더 뚜렷하게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달래다운 결혼식이었고 그러하기에 오랜만에 마음을 담아 축복하는 자리였다. 행복해라 달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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