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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cation Feb 04. 2024

너무 씩씩하게 좀 굴지 마!!! 괜찮은 줄 알잖아!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어도 걱정은 뱉을 수 있다.

언제였더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역시 임신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시험관 N차 종료를 확인하고 다음 차수를 준비하기 위해 난임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니 남편이 나에게 말하길.


"의사 선생님 앞에서 너무 씩씩하게 굴지말자.

네가 힘든 걸 알아야 선생님도 좀 더 신경 써주시지 않을까?"


남편에 따르면 진료실 들어가면서 대기실에서 들릴 정도로 활기차게 인사를 외치는 건,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진료를 마치는 건 나 밖에 없는 것 같단다. 남편의 주관도 물론 섞여 있지만 과장은 아니다.


몇 번의 실패 속에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선생님, 열심히 해보자고 용기를 주는 선생님을 대하는 건 나에게는 어색한 일이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슬프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슬프긴 한 걸까? 왜 이번에는 실패했는지, 이번에는 성공시킬 자신이 있으시냐 선생님에게 따져 물어야 할까? 왜 나에게는 임신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토로해야 하는 걸까?

내 안에 너무 많은 감정들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그러니 그냥 웃어버린다. '알겠다', '잘 되겠죠'이 어색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버린다. 



구의역의 고래바에서 N을 만났다. 4명의 동갑내기 회사 동료 모임은 그녀가 퇴사를 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수다 메이트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따로 만나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번 자리는 N이 먼저 제안을 했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가볍게 마시면서 그녀가 나에게 말하길.


"너 위로하려고 만나자고 했어. 시험관 잘 안된 거.

힘들 것 같은데 네가 힘들다고는 잘 말 안 하니까 내가 먼저 선뜻 위로할 수가 없잖아"


그 당시 우리 모임의 V가 가족의 병환이라는 큰 일을 겪고 있었다. 그녀가 첨언하길.

"V일도 너무 힘들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일이 결코 덜 힘들거나 위로받지 않기에 작은 일 아니야."


N의 이야기에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 일부러 이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결코 V의 역경에 나의 역경을 비교하지도 않았다.

그저 난 나의 힘듦의 정도를 그때까지 인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힘든 건가?' '주변에서 힘든 일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걸?' '이 정도면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N의 이야기가 유독 고마웠던 건

'내가 진짜 힘들 때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구나. 내가 손을 뻗으면 기꺼이 잡아 줄 친구들이 있구나. 나를 격려하기 위해 드릉드릉 대기 중인 누군가가 있구나.'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든든한 위로/격려 대기조가 생겼다.


나는 11년 차 직장인, 그중에서도 스타트업 5년 차 이제는 팀을 리딩하는 팀장이다.

스타트업, 팀장..... 업무강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시험관 시술 초반에는 시술날 노트북을 들고 아침 업무를 하면서 대기를 하기도 했고 바로 출근을 하기도 했다. 시술 시 안내 사항에도 출근은 가능했고 시술 후에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시술은 시술, 일은 일이었다.


쉬는 날도 열심히다. 이렇게 브런치글을 쓴다거나 요리를 해 먹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볍게 운동을 한다거나 책을 본다거나 그냥 보내는 시간이 없다.


요즘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너 좀 쉬어, 그만 바빠"


심지어 안정주의자인 엄마 조차도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것을 슬쩍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쯤 되니 나의 '힘듦'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기준이 높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분명히 힘들 법도 한데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힘들어도 할 만하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할 만하다'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나 자신이 힘들다는 걸 인정 못하는 이유? 솔직하지 못하는 이유? 글쎄, 나는 어떤 마음인 걸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은 답이 없는, 질문이 가득한 글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를 염려하는 남편, 친구, 가족, 주변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들은 내가 한 어떠한 선택, 깨달음 모두 인정해 줄 거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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