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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cation Jan 28. 2024

엽산중독

임신 준비 영양제를 배부르게 먹고 있다.

"이 정도면 나도 엽산 중독 아닌가?"

최근 약 중독에 대한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든 엉뚱한 생각. 결혼 직후부터 먹기 시작한 엽산이다. 하루에 한 알씩 쌓이고 쌓여 벌써 5년가량 먹고 있다. (엽산은 수용성이기 때문에 몸에 쌓이지 않고 배출이 되기에 쌓인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약 특히 영양제의 효능에 대해 회의적인 엄마 아래 자라났던 터라 이렇게 꾸준히 챙겨 먹는 영양제는 엽산이 처음이다. 엽산도 필요해서 먹었다기보다는 임신 준비의 필수 영양제라고 하니 '뭐 이 정도 준비하는 성의는 보여야겠지'라는 거만한 생각에 먹기 시작했지. 

그런데 어느덧 5년째 먹고 있다. 임신 준비만 5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침마다 7종을 챙겨 먹고 있다. 

1. 엽산 

2. 비타민 D 

산전 검사에서 유일하게 지적받은 수치가 비타민D 수치였다. 낮긴 했으나 정상범주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시험관을 하려던 친구가 비타민D 주사를 맞고 바로 임신에 성공했다며 비타민D를 챙겨 먹는 걸 신신당부했다. 조금이라도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먹기 시작했다. 비타민D 수치는 충분히 올라왔다. 

3&4. 크랜베리, D-mannose 

임신 준비가 고역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방광염이 있다. 3개월에 한 번 많게는 한 달에 한 번도 방광염으로 고생했다. 컨디션 난조, 약간의 자극에도 쉽게 생기 던 터라 부부관계가 고역이었다. 반신반의하며 먹기 시작했는데 효과는 탁월했다. 둘 다 알이 너무 크고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양이 많다. 끊으면 다시 생길까 봐 소량이라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5. 여성용 유산균 6. 이노시톨 7. 코큐텐

지난번 시험관 때 처음으로 난자질이 좋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주기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서 난자의 퀄리티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지만 마음이 복잡해졌다. 

'난자질이 좋지 않아요'가 곧 원인 아닌가. 

'결국 나의 탓인가' 하는 못난 생각과 동시에 원인불명으로 답답해했던 걸 생각하면 희망적이기도 했다. 

개선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선생님께서도 난자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양제를 추천해 주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3개의 영양제를 바로 주문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쯤은 화가 난 채로 

'이제 이거 먹으면 좀 더 확률이 높아지려나?' 반쯤은 희망을 품으며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늘어버린 영양제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묘하다. 

결국 이렇게 늘어버릴 거였다면 빨리 확 먹어버릴걸. 이것까지 먹어야 해? 하면서 콧대 높게 굴었던 과거의 내가 우습다. 뭐, 그때의 내가 알았겠나 이렇게 난임기간이 길어질 거라는 걸. 



난임기간이 길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도 같이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의 검사 결과 역시 깨끗하니 더더욱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에는 같이 먹자고 해도 시큰둥했다. 서운했다. 


그러던 그도 요즘은 나와 함께 엽산, 이노시톨, 코큐텐을 먹는다. 

이제 와서 먹는다고 고마워할 것도 심술부릴 생각도 없다. 

영양제를 먹는 그 마음이 아마 나와 같을 거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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