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선택할 것인가? 시어머니를 선택할 것인가? 에필로그
남편 역시 난임의 당사자이다. 그래서 난임 라이프의 퀄리티는 당사자들 간의 원활한 협조와 팀워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신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다 할지라도 어쩔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한 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터놓고 이야기하며 논쟁한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적어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거나 들인 노력보다 크게 상대를 기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INTRO
Daum 홈&쿠킹 지면에 이 글이 소개가 된 것이다.
역시 시댁과의 갈등은 주목을 받는, 일명 먹히는 소재임을 확인하면서도 내가 그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왜곡이 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남편의 역할' 이였다. 시어머님과의 대치 상태가 꽤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의 순간이 일상적인 일처럼 찾아왔다는 것. 그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이 컸다 생각한다.
08화 남편과의 대담(2) 솔직히 넌 지금까지 한 게 뭔데? 바로 09화에 시어머님과의 갈등을 쓴 이유이지만 댓글을 보니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자신의 엄마와 자신의 부인 사이에서 선택을 했어야 했던 순간이었다.
09화의 진짜 제목은 아마도 '엄마를 선택할 것인가? 부인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었을까?
DIALOGUE
나 : 와, 지난번에 올린 브런치글이 계속 조회수를 받고 있더. 5천 돌파했대.
오빠 : 이러다가 유명해져서 엄마한테 전화 오는 거 아니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지금은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작년 이맘때만 생각해도 달랐어. 신정 때 어머님께 따로 인사드리지도 않았고 곧 다가올 구정 연휴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거든. 참 나도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그때까지도 어머님에게 계속 화가 나있던 것 같아. 오빠는 어땠어? 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어?
오빠 : 원망? 글쎄, 원망이라기보다는 엄마와 너를 둘 다 이해하지 못했었어. 두 사람 모두 이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이 두 쪽 날 것처럼 행동했으니까.
나 : 나는 두 쪽 날 것 같았거든? 내가 잘 이해가 안 되었으면서 결국 오빠는 내 편을 들었잖아?
오빠 : 그렇지, 조금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게 엄마였었고 엄마가 너에게 화를 내는 걸 보면서 나 역시 놀랐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나와 엄마는 부모, 자식 간이니까 너의 편을 드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 내가 엄마를 서운하게 한다고 해도 엄마와 나는 남이 된다거나 쉽게 끊어지지 않을 테니까.
나 : 오빠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효자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 그 시각을 가지게 된 게 그 부동산 아저씨 때문이었지?
오빠 : 맞아. 이상하게 기억이 뚜렷한 날이야. 취직해서 자취방을 구하러 엄마와 함께 부동산을 갔었던 날이었지. 한참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사장님이 나에게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나중에 결혼해서 엄마와 부인이 다투게 된다면 꼭 부인의 편을 들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었어. 그때는 '뭐지?' 하고 잊고 있다가 결혼을 하고 나니 그 일이 다시 기억이 났고 새롭게 해석이 되더라고. 그 짧은 시간에 엄마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보였길래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걸까?라고.
나 : 여장부 어머님과 착한 아들이었겠지. 나는 우리 부모님만큼 우리 어머님을 존경하지만 만만치 않은 분인 건 어머님을 3초만 만나도 알 수 있잖아. 암튼, 그 이야기 때문에 내 편을 들었던 거야?
내가 자기중심적인 거 누구보다 네가 잘 알잖아. 떨어져서 사는 엄마보다는 같이 사는 와이프와 사이가 좋은 게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옳았던 거지.
나 : 그리고 그게 현명하다고 하는 거야. 보통은 그 사실을 모르는 남편들이 많거든. 근데 오빠 내가 계속 어머님께 화가 나 있었으면 어쨌을까?
오빠 : 그래서 지난 대담에서 남편의 역할은 '끈기를 가지고 가만히 기다린다'라고 한 거야. '끈기를 가지고'가 중요해. 물론 어쩔 때는 참견하고 싶지. 하지만 끈기를 가지고 너 아니면 엄마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어, 알잖아. 괜히 옆에서 하라고 부채질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어.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중요치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생기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겠다 싶기도 했어.
나 : 아, 이럴 때는 '당연히 내 와이프가 착해서 시간이 좀 지나도 잘 매듭지어질 거라 믿었어' 정도로 나 칭찬해 주면 안 되나?
오빠 : 너도 '끈기를 가지고 가만히 기다려봐'. 꼭 이렇게 콕 집어서 이야기하니 물론, 너라서 믿은 것도 있긴 하지만 괜히 더 그렇게 말하기 싫어지는 걸? (ㅋㅋㅋ)
OUTRO
울며 겨자 먹기처럼, 나의 등쌀에 못 이겨서 한 선택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편하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했지만,
이제 남편은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부모도 아닌 나와 남편, 우리 서로가 서로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것.
이렇게 가족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