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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cation Jan 07. 2024

남편과의 대담(2) 솔직히 넌 지금까지 한 게 뭔데?

난임 라이프, 남편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편 역시 난임의 당사자이다. 그래서 난임 라이프의 퀄리티는 당사자들 간의 원활한 협조와 팀워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신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다 할지라도 어쩔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한 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터놓고 이야기하며 논쟁한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적어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거나 들인 노력보다 크게 상대를 기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INTRO

가끔은 억울할 때가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운만 입고 작은 골방에 누워서 시술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쓸쓸함

아침저녁으로 숙제하듯 질정을 넣을 때의 귀찮음

피 뽑는 만큼 아픈 지혈 밴드를 땔 때의 성가심

정기적으로 챙겨서 먹어야 하는 약을 깜빡했을 때의 가슴 철렁함


모든 과정을 몸빵 해야 하는 게 나라는 게 가끔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특히 남편이 나의 노력을 의심할 때, 남편이 너무 가볍게 난임을 이야기할 때, 

목 끝 아니 혀 끝까지 이 질문이 올라온다. 이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제는 전쟁이다. 


"솔직히 넌 지금까지 한 게 뭔데?"


DIALOGUE

나 : 오빠에게는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통 이 주제는 우리가 싸울 때 내가 오빠를 공격하는 질문이니까. 바꿔서 질문하자면 난임 라이프에 남편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해?

남편 : 음, 3가지 정도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 

첫 번째 주사 잘 놓기 두 번째 와이프의 변덕 견디기 마지막으로 끈기를 가지고 가만히 있기. 두 번째하고 세 번째는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 뭐야, 약간 돌려 까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머지? 내가 변덕을 그리 많이 부려?

남편 : 변덕이라기보다는 너는 어쩔 때는 아이를 갖는 것에 의욕적이다가도 어쩔 때는 낙담하고 하니까. 상대적으로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지. 나라도 언제나 잔잔하게. 낙담하고 있는 사람 옆에서 속 없이 힘내자 파이팅!이라고 응원하기도 좀 그래. 시술, 약 이런 걸 내가 겪는 게 아니니까. 

나 : 힘내라고 이야기해주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작년 초인가. 오빠랑 크게 다퉜던 게 기억나. 오빠는 시험관 시술을 했어도 발발 거리면서 집안일하려고 하고 어쩔 때는 무알콜 맥주를 찾고 티를 하나 마실 때도 시험관에 영향이 있을지 찾아보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했잖아. 물론, 내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내 맘을 의심했을 땐 정말 화가 났어. 내가 못하고 있는 걸 같이 챙겨주면 되는 거지 내가 꼭 무책임한 것처럼 이야기 했으니까. 

남편 : 내가 챙겨주는 건 너의 기준에는 별 게 아니라 생각하고 듣질 않으니 나도 화가 났지. 너도 너 멋대로 하려고 하니까. 

나 : 그건 인정해. 흠흠. 그래도 안 그래도 잘 안되고 있는데 꼭 나의 행동 때문에 안 된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게 너무 큰 공격이었어. 그러니 그럼 오빠 넌 아이를 갖기 위해 뭘 하고 있는데!?라는 반문이 생기게 되지. 그렇게 오빠도 운동하라고 해도, 영양제 먹자고 해도 자긴 이미 수치상 문제없다면서 귓등으로 들었잖아. 

남편 : 그래서 세 번째, 끈기를 가지고 가만히 있기.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게 무엇이든 서로 서운한 게 생기니까. 

나 : (무시) 그럼 뭐 나는 내 몸에 문제 있다고 나온 것도 없는데 (씩씩)

남편 : 내가 운동, 영양제 먹는 게 하기 싫어서였지. 너를 탓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이기적이고 뻔뻔하다고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어. 그래도 지금은 운동도 하고 영양제도 잘 먹고 있잖아. 

나 : 이왕 하는 거 내가 원할 때 해주면 얼마나 좋냐고. 


나 : 가끔 난임 카페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들은 시술날 정액을 채취하는 게 얄밉다는 의견이 많거든. 와이프처럼 시술이 아니라 마스터베이션이니까. 

골방에서 정액 채취할 때 무슨 생각해?

남편 : 별 감흥 없어. 진짜. 진짜 흔히 이야기하는 현자 타임이 더 심하게 오는 것 같아. 말 그대로 골방 같은 곳에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냥 이상한 경험인 거지 막 좋거나 짜릿하거나 하지 않아. 그리고 혹시 수치 안 좋아서 다시하라고 할 까봐 얼마나 긴장된다고.

나 : 흠. 이건 진짜 오해? 편견 일 수 있겠구나. 

남편 : 맞아. 남편들을 뭘로 보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난임 과정을 10으로 봤을 때 오빠가 생각하는 남편과 와이프의 담당 비율은 어느 정도인 것 같아? 

남편 : (숨도 안 쉬고) 9대 1. 와이프가 9지. 남편들은 별로 하는 게 없긴 해. 

나 : 뭐야. 본인에게 1이나 준단 말이야?ㅋㅋㅋㅋ 감히!?  

그럼 만약에 오빠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역할을 바꿀 수 있게 되었어. 그럼 바꿔줄 거야?(기대)

남편 : (숨도 안 쉬고) 아니, 그 1의 역할을 내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서로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효과적인 거잖아? 내가 계속 1할께. 

나 : 너무 웃기네!!!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 상대인 내가 판단해야지 왜 본인이 판단해!!! 얄미워!!!!!!!!!!



OUTRO

나와 역할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말 

"에이 장난이겠지~" 나를 놀리기 위한 장난이 아니라 순수한 진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 대신 1을 열심히 할 사람이라는 것.

남편이 말한 남편의 역할 3가지는 비록 그 비중이 1이더라도 나에게 너무 필요한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남편의 그 1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다음 9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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