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테기 두 줄과 함께 코로나도 함께 왔다.
22년 3월 첫 시험관 시술을 했다. 이전과 다른 방법을 시도했으니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과 희망을 품은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실패에 대한 대비도 했다. 시험관 1차 만에 성공한다는 건 기적이라는 난임 카페의 글들을 되뇌면서 마인드 컨트롤도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마음이 계속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건 어찌 막을 도리가 없었다.
시술 후 1차 피검사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주말 아침이었다. 몸이 무겁다는 남편, 갑자기 걱정되어 코로나 키트를 사 와서 검사를 해보라 하니 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란다. 찝찝한 건 사실이었지만 진짜 증상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면 남편이 좀 더 기민하게 움직였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함께 아침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이미 결론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의 안일함을 비웃듯 코로나 키트에는 두 줄이 떴다. 너무 화가 났다. 남편이 너무 미웠다. 아픈 사람에게 대한 예의는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때는 남편이 아픈 것보다 남편의 안일함에 화가 났다.
'지금 내가 시험관해서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데. 니 몸은 네가 조심해서 더 예민하게 굴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몸이 안 좋았으면 나랑 같이 아침 먹기 전에 키트 사 와서 했었어야지!!!!' 씩씩거리면서 화를 빽! 하고 냈다. 그 분노는 남편에게 향하긴 했으나 괜찮겠지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짜증과 실망도 섞여 있었다. 남편을 탓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안방에 남편을 유배시켰다. 말이 유배지 컴퓨터와 책상, 게임기를 넣어주고 매 끼니 챙겨주니 이런 고오급 룸서비스가 없다.
하지만, 이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틀 만에 나의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나도 걸렸구나' 그렇게 나의 코로나 키트에도 두 줄이 떴다. 1차 피검사일 이틀 전의 일이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기 위해 병원 가기 전 어쩔 수 없이 임신 테스트를 했다. '어쩔 수 없이'라는 표현을 쓴 건 피검사일 전에 임신 여부 테스트를 하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을 깰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임신 테스트기를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내내 노예가 되어 버린 날들의 레슨런이다.) 기대는 했지만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미 결론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나의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비웃듯 임신 테스트기에는 두 줄이 떴다. 그렇게 보고 싶던 두 줄이였는데, 막상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창가로 다가가 이리저리 임테기를 돌려 본다. 두 줄이다.
그렇게 난 울었다. 기쁘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이 두 줄이 생겼다는 것보다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더 컸다.
왜 코로나 키트도 두 줄, 임신 테스트기도 두 줄이냐고!!!!!!
남편은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느냐' 했지만 '야 이 자식아 지금 내가 부정적인 생각 안 할 상황이냐!!!'
코로나 진단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도 혹시 모르니 타이레놀만 처방해 주었고 격리가 시작되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낭보와 비보를 동시에 전했다. (당연히 부모님께는 비보만을 전했다.) 친구들에게 임테기 두 줄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막상 기분이 몽글몽글하면서 진짜 임신 성공한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위해서 배달어플을 이용해 과일, 죽, 디저트를 보내줬다. 남편은 임신테스트기를 공구하는 사람처럼 20박스 넘게 주문했다. 나는 네이버 계산기로 출산예정일을 계산했다. 설레발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두 줄과 임테기 두 줄은 서로 연결되어 있던 걸까? 코로나의 기세가 사그라들수록 임테기 역시도 점점 색을 잃어갔다. 짙어지지 않은 임테기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던 일이라곤 난임 카페의 글을 필사적으로 뒤지는 일 밖에 없었다.
임테기 색이 짙어지지 않아도 임신이 성공되는 실낱 같은 희망의 사례들을 뒤지고 뒤졌다. 99개의 사례가 나의 실패를 이야기했지만 어쩌다 찾은 1개의 성공 사례가 내가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격리 때문에 병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심적으로 힘들었다. 차라리 피검사로 수치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서서히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코로나가 힘든 게 아니었다. 실패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말라가는 과정, 초조함이 너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서 격리가 끝나고 피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슬프기보다는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의연, 긍정한 남편은 나를 위로한다. 남편이라고 왜 나에게 미안하지 않겠으며 왜 속상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란 걸, 불임이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잖아?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조금 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그 말이 아예 얄밉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나를 격려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수긍한다.
그렇게 우리의 코로나, 첫 임신 시그널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