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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cation Dec 17. 2023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어요. 배추랑 무요.

난임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해서 (1) 

들어가면서(INTRO)

"마음 편하게 가져"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격려의 표현 1위다. 모든 어려움, 모든 병이 그러하겠지만 난임은 특히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패의 빈도가 잦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꾸준한 실패. 

그리고 그 쓰린 실패의 마음을 모두 털어낼 겨를도 없이 다시 시작되는 도전. 

난임 상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날들이 생각보다 없기에 잠식 당하기 너무 쉬운 환경이다. 


물론, 나는 사부작사부작 이것저것 무언가를 시도하고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부작거림은 내가 '편안한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도 무엇인가를 '성취'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와 남편은 2년차 도시 농부이다. 

송파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솔이텃밭을 23년, 24년 연이어 경작했다. 2평이라는 작은 텃밭에서 계절과 절기에 맞춰서 모종을 심고 작물을 가꾸고 수확을 한다. 


텃밭의 기본 of 기본인 상추와 치커리

어쩜 이런 색이 나올 수 있을까. 빨갛고 노란 방울토마토와 대저토마토, 파프리카 

눈 뜨면 쑥쑥 자라 있는 가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명이와 당귀

일상적으로 너무 잘 쓰는 쪽파, 대파

속이 차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던 양배추와 배추 

허벅지만 한 무라는 표현을 실감했던 무 

우와, 진짜 그 맛이 나네! 먹으면서도 신기했던 샐러리 



초보 도시 농부 이지만 이 작물들을 키우면서 농부의 마음, '자식 같은 OO(작물)' 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아주 조금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식이 없기 때문에 '자식 같은' 이라는 말을 100% 공감할 수 없긴 하지만

'누군가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원하고 바라보는 즐거움' 이라고 나름대로 풀어서 써본다. 


매주 시간을 내서 텃밭에 방문해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천연 비료를 만들어서 뿌린다. 그 과정에서 모기에게 물리기도 하고 서툰 농기구를 다루면서 땀도 뻘뻘 흘린다. 예상보다 너무 더운 날씨, 너무 추운 날씨에도 텃밭의 아이들을 먼저 걱정한다.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남편 조차도 '귀찮지 않냐' 하지만 내가 투자한 모든 시간과 마음이 잘 자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보답이 된다. 


이런 작물도 나에게 이런 감정을 주는데, 실제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더 감동을 받으려나 싶다. 다. 조금 우스울 수 있지만 열심히 작물을 키우고 염려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거만하게도) 나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수확물은 열무김치, 깍두기, 가지밥, 피클, 샐러드 등 다양한 메뉴에 도전 할 수 있는 또 다른 트리거가 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그 다음 도전을 기꺼이 계획하게 한다. 그렇게 나는 성취를 이어갔고 성장했다. 비료 뿌리고 모종 심는 법도 알게 되었고 가지치기도 겁내지 않게 되었다. 왜 김장이 11월 초에 하는 지도 알게 되었고 어떤 무가 맛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오전 오후, 각 계절마다의 하늘, 공기, 햇살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 비료 냄새 가득한 흙 냄새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써보니 성장보다는 인생의 밀도가 조금 더 높아졌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 하다.


때론 귀찮기도 했지만 텃밭이라는 갈 곳이 있는 게 좋았다.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물을 주고 채소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내가 이 세상에 무언가를 창조하고 보살필 수 있다니! 신이 되었다는 거만함이 아니라 나의 쓸모를 하나 발견한 가녀린 안도의 마음이다. '나도 무엇인가를 탄생시킬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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