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과 이성 사이
남편 역시 난임의 당사자이다. 그래서 난임 라이프의 퀄리티는 당사자들 간의 원활한 협조와 팀워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신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다 할지라도 어쩔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한 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터놓고 이야기하며 논쟁한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적어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거나 들인 노력보다 크게 상대를 기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INTRO
결국 시험관까지 가게 되자 친구들이 물어본다. 그들은 고생하는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 던진 질문이었겠지만 나는 되려 더 심란해졌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거지?" "이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나?"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가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DIALOGUE
나 : 오빠는 아이를 왜 가지고 싶어?
나 :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당신의 재미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괜히 부아가 난다)
남편 : 나만의 재미인가? 우리 둘 만으로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지루하고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 건 너였잖아.
나 : 맞아. 뜨거운 사랑 후에 오는 안정감, 편안함만으로는 앞으로 30년 이상을 사는 게 우리 둘에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의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남편 : 나도 동의해. 우리의 삶이 더 다이내믹하게 변할 거야. 그리고 난 아이를 갖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 결국 모든 생물은 번식을 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잖아. 딩크 라이프를 선택한 사람들을 탓하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성적으로 그 본능을 거부한 선택의 대가가 분명히 있을 거야.
남편 : 아이를 가지신 분들이 하는 레퍼토리 있잖아. 아이를 가지면 인생의 고통 -1,000과 기쁨 +1,000으로 그 폭이 넓어진다고 정말 힘들긴 하지만 그 이상의 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아이를 갖지 않으면 이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사는 거지.
나 : 그렇지, 부모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 보다 나, 너 개인으로의 삶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린 거잖아. 그게 난 본능을 거스르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리고 동물 중에서도 환경이 힘들면 번식 수를 자연스럽게 줄이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일개미들은 번식을 모두 여왕개미에게 맡기잖아.
남편 : 지금까지는 인류는 살면서 아이를 낳는 게 더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왔었어. 그 사이에 개개인이 힘든 일이 없었겠어? 전쟁 중에도 아이가 생길 정도인데 말이지. 인간의 5대 욕구 중에 성욕이 있는 거 보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 : 난 성욕하고 번식욕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 결혼하기 전에는 '아이를 갖기 위함'이 아니라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섹스를 하잖아. 물론, 그 쾌락의 이면에도 번식욕이 있다고 한다면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내 종족을 남겨야 하는 의무감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남자들이 유난히 집착하는 게 사회학적인 교육에 의한 건지 이거야 말로 본능인 건지 싶네. 아, 아니다. 할머님들이 아들 아들 하는 걸 생각하니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먹고 하는 게 결국 다 행복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이미 아이를 가져서 행복한 레퍼런스들이 많은데 억지로 그 레퍼런스들은 과소평가하면서 '행복하지 않을 거야', '힘들 거야.'에만 집중해서 볼 문제도 아닌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 : 맞아. 동의해. "왜?"라는 질문에 빠지다 보니 아이를 가지려는 이유는 '행복하려고' '재미있으려고' 두루뭉술한 감정이면서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가질 필요가 없는 이유는 '교육비 때문에' '험한 세상이라서'와 같이 엄청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이라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 난 그래도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의 선택 역시 불행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라고도 생각해.
남편 : 이 질문으로 널 시험에 들게 하지 않았음 해. 우리 결혼 직후부터 아이가 생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신혼을 보냈잖아. 시험관까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에 대한 회의감은 이해하지만 난 그래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우린 잘할 거고 잘 키울 거야.
나 : 만약 내가 시험관에 지쳐서 하기 싫다고 하면? 오빠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되려 무겁네.
남편 : 물론, 나는 네가 그렇게 불행하면서까지 계속 시험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괜히 먼저 부정적이지 않았음 해. 노력할 때까지 해봤는데 어렵다면 그건 진짜 어쩔 수 없는 거지.
남편 :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
OUTRO
나를 위해서, 나와 내 남편의 행복을 위해서 태어남과 동시에 생로병사의 숙명을 직면하게 될 나의 아이에게
심심한 위로와 사과를. 난 없는 존재인 너를 이미 사랑하고 있기에.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탓한다 해도 결국은 너 역시 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해할 것이라 생각해.
P.S
그리고 난 엄마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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