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글쓰기 주제를 던져줬다.
1988년 7월 20일, 내 생일. 막상 나는 그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진짜 내가 그날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엄마아빠가 나의 생일을 7월 19일이라고 알려줬다면, 내 출생신고를 2월 7일에 했다면 그날이 곧 내 생일로 알고 살았을 것이다. 엄마아빠가 나를 처음부터 속이지 않았길 바랄 수밖에.
엄마아빠가 나를 속이고자 했다면 생일을 여름이 아닌 가을 9월이나 10월 생으로 만들었겠지 싶다. 나름 내 생일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꽤 크고 깨달았다.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이 87년 11월이었고 나의 생일이 7월인 즉 나는 팔삭둥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짐작에 쐐기를 박았던 것인 바로 아빠였다. 우리 가족이 부산에서 서울로 급하게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걸 매우 무서워했는데 그때 아빠가 나의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너 너희 엄마랑 똑같다. 너희 엄마가 신혼여행 제주도 갈 때 비행기 타기 무섭다고 그때 너도 배안에 있었는...!?!?!?!!?" 뭐 이런 맥락으로 TMI를 방출한 것이다. 그때 앗차 싶던 아빠와 흠칫 놀라서 당황하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깔깔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 속도위반이 조금씩 공론화(?) 되던 시기라 우리 엄마아빠가 속도위반계의 '얼리어답터' , '트렌드세터' 였다고 근사한 타이틀까지 붙였다. 엄마아빠는 결혼을 약속 한 이후에 그리 되었다고 괜찮은 거라고 나름 합리화하던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결혼식날까지는 기다릴 수 없었던(!) 뜨거웠던 청춘, 사랑의 날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상상하는 1988년 7월 20일의 이미지가 있다. 바로 엄마가 비가 오는데 서둘러 택시 뒷좌석에 몸을 던지며 '병원 이요' 하는 모습이다. 출산의 과정을 더 알게 된 지금 엄마가 나를 낳으러 간 그날이 바로 내가 태어난 날일지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갔던 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비가 오는 날 태어났고 아빠가 출근했던 중에 엄마가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아마 저런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도 아빠도 그날을 기점으로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다시 태어난 날이었는데 그때 엄마 나이 27, 아빠 나이 28 임을 생각하면 애가 애를 낳는 격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를 가지고자 노력하면서 막상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가지고 낳았나 궁금했다.
엄마와 함께 주제를 주고받으며 글을 쓰고 있었는데, 엄마에게 주제를 던졌고
아래의 내용이 엄마의 답이다.
따님이 보내준 글쓰기 제목이다.
솔직히 생겼으니까 낳았지가 나의 솔직한 대답이다^^
다만 결혼 전 임신이 되어서 쫌......
아기를 가져야 되는 건지 왜 낳아서 어떻게 길러야 되는 건지, 3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식을 낳은 부부가 몇이나 될까?
그때는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면 낳고 기르는 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우리 시대 대부분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엄마가 아기를 기르는 거고 그건 당연시되었다.
아기를 낳아서 기르면서 좋은 점보다는 힘든 것이 더 많았지만
그게 생활이었으니 힘들다는 것보다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아이를 낳고 나서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나의 엄마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 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
나의 아이를 기르면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감정들도 알게 된다. 나의 부모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키웠는지 조금은 알게 되며 '부모님께 잘해야지' 철이 들어가지만 그것도 잠시다. 나와 내 자식이 더 중요해지며 다시 나의 부모는 뒷전이다. 이 역시 순리라고 생각이 된다.
솔직히 둘째를 낳기로 한 것도 뭐 거창한 고민이 있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그 땐 둘은 낳아야한다는 사획적 통념이 있었으니 나 역시 '자식이 둘은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자식을 낳는 것이 부부의 선택이 된 시대이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키운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보람의 1%가 힘듦의 99%를 견뎌내게 하는 힘이 있다.
정답은 없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
따님은 어떤 대답을 생각했을까
굉장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거창한 이유도 없이 나의 아이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가끔은 나, 엄마의 욕심 때문에 자식노릇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들었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내가 그랬듯 너희가 나중에 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기를......
그래서 너희 아이들에게는 우리보다 나은 현명한 부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