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형 J인 나에게 난임이란?
24년 3월 23일(토) 14시 LG트윈스 VS 한화이글스 KBO 24년 시즌 개막전이 열렸다. 한화 류현진 선수의 12년 만의 국내 복귀 첫 경기였으며 LG트윈스 역시 잠실에서 맞이하는 오랜만의 개막전이라 관심이 뜨거웠다. 그 관심은 피켓팅으로 이어졌지만 난 다행히도 개막전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채취일은 토요일이 확정이네요" 선생님의 한 마디가 있기 전까지 나는 개막전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네? 꼭 토요일이 여야하나요?"라고 재확인, "네, 토요일 확정이에요" 땅땅땅 쐐기를 박아버리는 선생님.
아, 이렇게 계획 변경이다.
개막전 표는 급하게 LG트윈스 팬 친구에게 양도했다. (친구는 양도날 아침에 새똥을 맞았다고 한다ㅋㅋ)
즐겁게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며 잠실 야구장 야채곱창과 무알콜 맥주를 먹겠다 기존의 계획과는 달리 나는 당기는 배를 부여잡고 집 소파에 누워서 반쯤은 졸면서 개막전을 '집관'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야구 경기, 해외여행 과 같은 사소한 계획에서부터
휴직, 공부 등 인생의 굵직한 결정까지 쉽게 계획할 수 없다.
아이가 생길 기회가 귀한 우리에게 시험관 시술일 뿐 아니라 착상기간, 임신 초기까지 최소 2개월 이상의 기간은 다른 일정을 최우선하기 어렵다.
이번 주기가 아이가 생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시험관을 쉬어도 되나? 여행을 가도 되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아도 되나?
복싱, 수영을 등록해도 되나?
이렇게 주저함이 생기면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이가 생기기 전 둘일 때 더 많이 다니고 경험하라는 주변 조언이 무색하다.
일단 질러놓고 아이가 생기면 취소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할 자신은 없다.
'취소를 하느니 아예 시작을 하지 않겠다'는 어줍지 않은 완벽주의가 내 특징이라는 걸 나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쉰다고 해서 아이가 생긴다는 확률이 정말 높아지는가?
임신이 나의 최고의 목표가 되는 순간이 두렵기도 하다. 일도 하지 않고 임신도 되지 않는 생산량이 없는 하루하루를 내상 없이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두려움이다.
또한, 내가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내가 가진 무언가를 포기하고 보류하고 싶지 않다.
이 역시 따지면 매우 비논리적인 의사 결정이다. 우선순위가 높은 일에 리소스를 분배시키고 그에 맞게 의사 결정을 내려하는데 말이다. 억지처럼 들리겠지만, 이런 욕심쟁이가 나인걸 어찌하나.
아니, 나는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겠지.
근데 내가 임신을 최우선순위로 놓지 않는게 잘못은 아니잖아? 죄책감 가질 것도 아니고.
J와 P의 결정적인 차이는 계획의 유무가 아니라 계획이 변경되었을 때 그 변동성에 잘 적응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생각하며 유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미 익히 알고 있지만 3년 넘게 '난임'이라는 돌부리에 계속 걸려서 넘어지다 보니 부아가 치밀고 멀리 넓은 시야를 가지기보다는 계속 치어 상처 난 발 끝만 보게 된다.
내 몸, 나의 가족계획마저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니!
이번에는 정말 나의 계획대로 짠! 하고 성공하면 안 되겠니!!! (쩌렁쩌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