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지고 키우는데 용기가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출근 준비를 하기 전 물 한 잔을 마시면서 TV를 켠다. 리모컨 22번을 눌러 Mnet을 튼다. 나의 아침 텐션과는 너무 다른 발랄, 유쾌한 아이돌들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스친다. 여기가 종착지가 아니다. 다시 리모컨의 채널 조정 버튼으로 23번, 24번 연합뉴스나 YTN에 맞춘다. 바로 23번, 24번을 누르면 되는데 말이다.
아침 뉴스를 라디오 삼기 시작한 건 독립을 하면서부터였다. '뉴스를 챙겨봐야지!' 결심을 하고 봤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뉴스 채널을 틀어 놓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건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뉴스를 보면서 어른들이 왜 쯧쯧 혀를 찼는지, 엄마아빠가 왜 일찍 일찍 다니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인들은 싸우고 있었으며 호황이라는 경제 뉴스는 남이야기, 불황이라는 경제 뉴스는 내 이야기였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가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들 중 선별되어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신문방송학과를 복수 전공했던 터라 알고 있다. 시의적절하거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수가 많거나, 유명한 것의 이야기 거나 우리 사회에 가까운 이야기 이거나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등의 조건들이 적용된다. 그중 '갈등과 사고'는 단연 No 1 뉴스 소재가 된다. 요즘 표현으로 도파민이 쏵 도는 소식들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포춘>, <타임> 지를 창립한 헨리 루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Good news isn`t News. Bad news is News"
뉴스를 보고 있으면 나는 성악설에 대한 믿음이 더 굳건해진다. 착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세상에서 예외적인 사고가 뉴스화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나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해질 수 있고 뻔뻔스럽고 이기적일 수 있음을 뉴스를 통해서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다. 나라고 착하게만 살겠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개인 스스로, 사회적으로 자정활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뉴스를 통해 본 이 세상은 살기 어렵다. 100개의 살고 싶게 하는 이야기 보다 10개의 삶의 의욕을 뚝뚝 떨구는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서 더 만연해진다. 나 개인의 삶도 녹록지 않는데 내가 살고 있는 세상마저도 회색빛이라니, 겨우 짜냈던 용기도 도망간다.
이는 아이를 가지고자 노력하는 나의 용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걸까?'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을까?'
'이 험한 세상 뭐가 좋다고 아이에게 이곳에서의 삶을 추천하고 있는 걸까?'
'이 험한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존재가 생기는 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생각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는 심지어 나의 아이 역시 누군가를 상처 줄 수 있고 뻔뻔하고 이기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까지 든다. (남편이 본다면 쓸모없는 생각 한다고 나를 혼낼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일만 보도해 주는 뉴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확히는 우리의 일상을 '기념' 해주는 뉴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영향력 있는 선행이 '긴급'으로 보도한다거나 자신의 역할을 다해 법을 개선한 정치인을 '헤드라인'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인파가 몰렸던 축제 장소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즐겼다는 소식도, 위험한 사고 상황 속에서 상부의 판단을 기다리기보다는 유연하게 판단하여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소식도, 어떤 날은 음주운전이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고 또 어떤 날은 친구와 함께 공부 루틴을 만들어서 함께 성적을 올린 중학생의 이야기는 어떨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토리텔링은 무엇일까?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반면교사보다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의욕을 주는 이야기들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그런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다뤄지는 사회라면 누구라도 살고 싶어 할 것이며
기꺼이 나의 사랑하는 존재에게 이 세상을 추천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용기와 사기를 북돋우기에 좋지 않을까.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면서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