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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cation Mar 03. 2024

남편과의 대담(4) 당신이 난임에 대한 글을 쓴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을까?

남편 역시 난임의 당사자이다. 그래서 난임 라이프의 퀄리티는 당사자들 간의 원활한 협조와 팀워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신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다 할지라도 어쩔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한 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터놓고 이야기하며 논쟁한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적어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거나 들인 노력보다 크게 상대를 기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INTRO

남편은 이야기를 즐겨하는 달변가이다. 그와 이야기를 잠깐이라도 나눠본 누구라도 남편의 말솜씨와 매력에 빠질 것이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활 속 비유를 잘 찾아내서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모습에 종종 영감을 받곤 한다. 그가 나의 친구들, 회사 동료 모임에도 자연스럽게 한 명의 멤버로 자리 잡은 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남편이지만 이를 기록하는 것에는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한다. 그의 좋은 생각, 감정, 일상을 기록하는 건 오히려 나이다. 남편의 사관 같다고 할까. 남편과의 대담 코너를 만든 이유도 그의 생각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내가 주제를 던지고 남편이 대답하면서 우리의 대화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이 기록은 그 과정마저 즐겁다. 


이번 주제는 '난임 신이 이리 어려울 줄 몰랐지'를 남편이 쓴다면?으로 정했다. 

말로 흘려보낼 이야기가 아니라 글로 남길 남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DIALOGUE

남편 : '절대로 남편들은 알지 못한다.'라는 주제에 대해서 쓸 것 같아. 난임 시술을 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 나는 네가 주사를 맞으면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 네가 시술할 때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전혀 알지 못하잖아. 그게 나의 알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지. 

나 : 그럼 이 글의 독자는 누구이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거야? 

남편 : 음... 당연히 메인 독자는 나와 같은 남편들이야. 

남편들은 이 과정에서 무엇이든 와이프들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빠르게 알면 알수록 좋은 것 같아. 

나도 처음에는 너에게 '먹는 거 조심해라'와 같이 이것저것 훈수를 두었잖아? 꼭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신경 쓰고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네가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 너의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니까. 근데 그때는 충고랍시고 말이 먼저 나갔던 것이 현명한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어. 그게 어찌 보면 다툼의 화근이었던 것 같기도 해. 

나 :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이런 건가? 

남편 : 가이드를 하기보다는 서포트를 하라는 거지. 이 과정의 운전대는 와이프가 잡고 있으니 조수석에 타서 그 역할을 다하라고. 와이프가 궁금해하면 지도 같이 봐주고, 간식 달라고 하면 드리고, 좋은 드라이브 음악 준비하라고 남편들은 그것만 잘해도 충분하다고. 

물론, 와이프의 운전 실력에 한 두 마디 참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여기서 차선 미리 바꿨어야지' '우회전할 때 깜빡이 왜 안 켜'와 같은 ㅋㅋㅋ 

나 : 실제 오늘 내가 운전할 때 조수석에서 오빠가 한 이야기였는데? 

남편 : 솔직히 더 하고 싶었어. 

나 : 흠흠...

남편 : 그리고 와이프들도 '절대로 남편들은 알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알아줬음 해. 그들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와이프들의 마음을 100%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 남편들에 대한 노력의 기대 수준을 너무 높게 잡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남편들이 덜 관심이 있어서, 덜 절실해서가 아니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만 있어도 이해의 폭이 넓어질 거라 생각해. 


나: 공감이 된다. 확실히 오빠랑 두 번째 대담 '남편과의 대담(2) 솔직히 넌 지금까지 한 게 뭔데?'에서 대화하고 나서 남편 역시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구나를 알게 되었거든. 그게 뭔가 위안이 되긴 했어. 

https://brunch.co.kr/@looking-around/31


남편 :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말조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하기 어려워지기도 해. 내가 뭘 안다고 괜찮다고 하는 걸까. 잘된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걸까. 그렇게 격려마저도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야. 


나 : 아이에 대해서 기록하고 싶은 거 없어? '아이야.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단다'와 같은 거라도 말이야.(장난)

남편 : (정색)에? 굳이? 난 아이가 자신이 어렵게 가진 아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7년 만에 생긴 아이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인지 모르겠는데. 이건 부모의 상태지 아이에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난 그런 이야기들을 때 마다 사춘기 때는 '누가 그러랬나?'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거든. 

나 : 아..... (뻘쭘) 이 기록을 남기고 있는 나는 내 아이가 이 과정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던 것도 사실이긴 해. 흠. 이기심인가. 생각해 보게 되네.

남편 :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아빠로서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면, 나의 고민 리스트를 남겨놓고 싶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나의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아이가 못하면 어쩌지?'

'아이가 건강하지 않다면 어쩌지?'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면 어쩌지?'

뭐 이런 현실적인 걱정도 있고.

'아이에게 살가운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바다를 궁금해하면 바로 바다로 떠날 수 있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에게 경제적인 교육을 어떻게 시킬 수 있을까?'

'아이가 자립적으로 자라려면?'

내가 아빠가 되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고. 

평소에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이런 생각들 꽤 자주, 많이 해. 

'내가 할 수 있을까?' 

나 : 나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아이를 위해서 나의 일을 잠시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럴까? 와 같은 고민 말이야. 

이런 고민 리스트들을 남겨 놓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예방 주사 차원에서 말이지. 

아이를 가지고 키우는 것이 꼭 행복한 미래를 보장을 하지 않으니까. 



OUTRO

룰루랄라 아이와 함께 놀 생각에 천진난만 긍정미를 뿜뿜 뿜어낼 줄 알았던 남편의 기록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있는 가장미(가장美)가 깔려 있었다.

든든하다. 

아이의 존재마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삶에서 고민의 방향과 결이 같은 확실한 동료가 있다는 것.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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