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라이프에 주사를 놓고 맞는 건 일상이다.
시험관을 하고 있다고 하면 10명 중 9명은 '주사' 이야기를 한다. 난임시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시술 라이프에서 주사가 '생활'이라는 건 안다. 주사를 놓고 맞으며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이제는 꽤 능숙하지만 이 역시 처음이 있었다. 시술 시작했을 때 주사실에서 남편과 다양한 주사법을 배울 때의 긴장감이 기억난다. 내가 스스로 놓는 첫 주사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서 시도했어야 했는데 혹시 내가 스스로를 찌르지 못하는,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친한 회사 동료에게 대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다행히 혼자 성공했다.)
주사 하나 맞는데 뭐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3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몸의 아픔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잡념은 없어지고 그 순간순간에 집중한다. 꼭 일부러 생각을 비우고 명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사액통에서 공기방울을 최소화하여 주사액을 주사 본체에 옮기고 얇은 주삿바늘로 교체한다. 바늘 끝에서 주사액이 찔끔 나올 때까지 공기를 뺀다. 미리 배를 조물조물 눌러보면서 뭉친 곳은 풀어주고 말랑말랑한 곳을 공략해 소독솜을 문지른다. 그리고 바늘을 최대한 직각으로 놓고 배를 향해 밀어 넣는다. 어떤 날은 바늘 끝에서 우둑, 어떤 날은 쑤욱, 또 어떤 날은 으지익이 느껴진다.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엄지누름대(주사기 밀대가 들어가도록 누르는 곳)를 누른다. 잠시 쉬었던 숨을 주사액이 들어가는 속도에 맞춰서 서서히 내쉰다. 내쉰 숨에 몸을 이완시키면 더 주사액이 잘 들어가지 않을까. 액이 다 들어가면 바늘을 빠르게 빼고 소독솜으로 빠르게 누른다. 이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행해지면 뿌듯함마저 느낀다.
이렇게 주사를 놓는 시기가 되면 내가 나의 안부를 더 자주 묻는다. 셀프 안부인사랄까. 몸에 인위적으로 뭔가를 주입시키는 것이다 보니 주사 부작용은 없는지, 피곤하지 않는지 좀 더 챙기게 된다. 다행스럽게 쉽게 살이 붙는 것 빼고는 큰 부작용이 없다. 정말 다행이다.
플라스틱으로 된 일회용 주사는 말 그대로 일회용이라 바로 일반쓰레기로 버리게 되는데 하나하나 쌓이는 주사기를 보면서 와, 이것 때문이라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엄청 나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난임이 결국 환경오염에 기여(!)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며 이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내가 얼른 임신을 해야겠다는 범지구적이고 인류애적인 책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 보면 난 N인 것 같기도)
최근 크녹산을 처음 처방받았다. 이 주사로 말하자면 시험관 시술 주사의 끝판왕이라고 불릴 만큼 악명이 높다. 검색창에 크녹산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크녹산 멍이 뜰만큼 맞을 때도 맞고 나서도 아픈 주사이다. 웬만한 주사, 아픔을 잘 참는 편인데 이 주사는 너무 아팠다. 스스로 맞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남편에게 다시 주사를 놓아달라 요청했다. 그래도 아팠고 무엇보다 멍이 너무 많이 들었다.
온 배에 가득한 멍, 나의 아픔을 눈으로 확인하니 나름 충격이었다. 눈으로 보이니 더 마음에 와닿아 박힌다. 흉터 하나만 나도 아쉬운 내 몸인데 푸르뎅뎅한 멍이 무늬처럼 피어있으니 내가 참 불쌍했다.
근데 뭐, 처량하고 불쌍한 들 결국 어쩌겠는가. 이런 연민에 오래 깊이 빠지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이 멍과 아픔 역시 과정이라 생각하며 잘 견뎌야지.
에잇 술이나 진탕 먹고 주사(酒邪)나 부리고 싶네. 주사(酒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