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지만 가장 낯선 너와의 접촉
질정은 말 그대도 질을 통해서 넣는 약이다. 근데 난 왜 이리 당황했을까? 질정 넣은 법 안내문이 적힌 종이와 함께 간호사 선생님이 가볍게 설명해 주신다.
"다리 한쪽을 올리고 질정을 잡고 손가락 두 마디 정도는 들어가게 넣어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다시 나올 수 도 있어요. 넣은 후에는 5분 정도 누워계시고요"
"네? 손가락 두 마디요?"
경험할 거 다 경험한 성인이고 알 거 다 아는 성인인데 (아니 모든 걸 알고 있는 성인이라) 설명에 따를내 모습을 상상을 하니 낯간지럽다. 거의 산부인과 검사용 의자 (일명 굴욕의자)에 처음 앉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다.
보통 시술 직전, 직후 착상 및 유지를 도와주기 위한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을 몸에 때려 넣는다. 이때 주사와 질정이 쓰이고 질정은 하루 2번, 임신이 된다고 해도 한동안 계속 넣어주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요해서 그런가 꽤 비싸기도 하다.) 지난 10번의 시술 기간 동안 아침에 알람 맞춰 일어나 몽롱한 정신에서도, 너무 피곤해서 침대로 바로 뛰어들고 싶어도 나는 질정을 넣어야 했고 넣어왔다. 질정을 넣고 누워 있는 시간을 계산하면 조금 과장 보태서 하루 반나절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역시 나만의 스킬이 생겨 수월해졌지만 처음에는헤맸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정확한 위치를 잡는 것부터 자신이 없었다. 변기 위에 다리 하나를 올려놓았지만 그다음 단계로 손이 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참 기분이 요상했다. 분명히 나 혼자인데도 부끄러웠다. 어색하고 긴장해서 질정을 너무 오래 잡고 있던 나머지 질정이 녹기 시작했다. 결국 그 비싼 질정 하나를 버리고 두 번째 질정을 쓰고 나서야 성공했다. 손 끝에서 미끌, 촉촉함과 온기가 느껴진다. 그것이 나와 나의 질의 첫 접촉이었다.
"안녕, 네가 나의 질이구나"
내가 질정을 넣는 자세 또는 그 접촉이 성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이 수치심의 근원이었을 것이라.
질정을 넣는 성스러운(holy) 치료 행위를 성스러운(sexual) 행위와 연결 지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죄책감, 부끄러움.
다시 묻는다. "그게 뭐 어때서?"
이어서 한 번 더 물음표를 던진다.
"왜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거지? 내 몸인데?!"
만약 내가 나의 간이나 장을 만질 수 있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과학적,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질은 여타 장기, 기관처럼 몸의 일부 '기능'을 담당할 뿐인데 다른 기관과는 다르게 감정과 판단이 들어간다. 나도 이렇게 내 몸을 타자화시켜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듯 성기는 가장 은밀하면서도 가장 사회적인 부위이다.
이는 남성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여성이 자신의 성기를 만진다는 건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것에 비해서 더욱 금기시되었던 것 같다. (이따금 남편을 보면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성의 성적 쾌락과 행동은 여성이 직접 경험하기보다는 사회의 눈을 통해 한 번 굴절, 왜곡되어 인지된다. 정말 만에 하나 쾌락을 느끼는 게 부끄러운 거라 해도 (반쾌락주의가 팽배했더라도) 질정 하나 넣는다고 내가 쾌락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뭐 부끄러워할 일이 있겠는가. 이렇게 내가 내 몸과 내 상태를 모른다.
네이버에 '질'이나 '고환'이라고 검색하면 맨 상단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결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라고 뜬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몸을 부정하며 자란다. 그렇게 자란 성인이 갑자기 성에 대해서 성숙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는 단순히 성관계뿐 아니라 성병, 임신, 난임 까지도 이어진다. 난임에 대해서도 '환경호르몬(?) 때문에' '스트레스 많은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늘어났지만 예전의 난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꼭 그렇지마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그려졌고 그 누군가는 보통 여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사회가 여성에게만 이런 압박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크기나 시간이 기준이 되고 파트너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액션들을 철칙인 마냥 알고 있는 걸 보면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이 문장 조차도 편견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고 누가 더 손해냐 나쁘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시절 들었던 여성학강의 속 사회가 이런 사회에 내재화된 여성이 바로 나였다는 걸 깨달은 이 아하! 모먼트를 기록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