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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cation Dec 24. 2023

공놀이에 울고 웃는 야구팬입니다.  

난임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2)

들어가면서(INTRO)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야" 

흔히 실연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본다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대체재를 찾는 것도 좋은 해결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고통을 잘 흘려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와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면 꼭 정면돌파가 아니어도, 그 사람/방법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 비록 누군가는 회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는 애초부터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며 심지어 그런 일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인 '난임'을 대하는 나의 방식도 비슷하다. 난임에 일상과 기분을 잠식당하기 않기 위해서 임신을 대신할 대체재가 필요했다. 이때 나와 내 남편에게 운명같이 나타난 것이 바로 '야구'다.

이 역시 나의 텃밭과 마찬가지로 (5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어요. 배추랑 무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야구는 내가 내 일상을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누군가, 무언가의 팬이 된다는 건 나에게 뜨거운 마음과 젊음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너무 쉽게 마음이 차가워지고 쇠할 수 있는 상황에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나와 남편은 2년 차 LG트윈스의 팬이다. 

지난 2년 간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방문 한 곳을 꼽자면 단연 '잠실 종합운동장' 일 것이다. 집 앞에서 한 번에 오고 가는 버스가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야구를 볼 줄은 알았지만 팬은 아니었던 우리가 갑자기 야구에 빠지게 된 건 '민주주의의 역설' 때문이다. 4명의 모임 중 나 빼고 모두가 LG트윈스 팬이었고 특히 오랜만에 전라도 광주에 살고 있는 친구가 서울에 오면서 야구 직관이 하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야구장 모임으로 확정, 그날은 남자친구, 남편 동반 모임이라 남편도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이 먼저 야구 직관 문화에 홀딱 빠지게 되었다. 집에서 LG 트윈스 응원곡을 틀어놓고 연습하고 직관 현장 영상을 찾아보고... 야구 자체보다는 응원이 너무 재미있었던 것. 남편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응원가를 기준으로 '유강남' 선수로 마킹을 했다. (나는 친구들이 오래전 오지환 선수의 유니폼을 강매 아니 사줬다. 그때 오지환 선수의 등번호는 2번이었다.) 

남편이 응원문화에 빠졌다면 나는 식문화에 빠졌다. 나 역시 야구장에서 나의 최애 음식인 '야채곱창'을 먹을 수 있음에 흥분, 감명을 받았다. 탁 트인 드넓은 야구장에서 맥주와 함께 즐기면 이런 신선놀음이 없다. 시작이 무엇이든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구팬이 되어버렸다. 


야구의 단점이자 장점은 '매일매일' 한다는 것이다. 시술을 하고 온 날도, 시술 결과가 나온 날도 야구와 함께 했다. 특히 시술 결과가 나온 날, 다시 말하자면 실패의 울적함이 엄습해 올 때 '그래, 오늘은 맥주 한 잔 시원하게 하면서 야구 볼 수 있겠어'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길게는 4시간까지도 야구를 보다 보면 어느덧 밤, 실패에 대해서 슬퍼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고 잠이 든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아침은 어제의 나와는 다르다. 

청량한 탄산을 머금은 거품이 마음 한 구석에서 퐁퐁퐁 올라오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야구는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막아준다. 


짜릿한 경기를 보며 환호하거나 차라리 선수와 감독에게 애정이 섞인 잔소리, 욕을 하며 내 안에서, 목 끝에 걸려 있는 무언가를 밖으로 내뱉게 한다. (야구팬들이 화가 많은 이유에 +1 추가되었습니다.)



야구장에 가면 아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의 팬들이 많다. 

작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도 LG 트윈스를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가장 기대하는 건 다름이 아닌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와 함께 야구를 보러 가는 것이다. 내가 야구장을 다니면서 가장 보기 좋아하고 부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아빠와 아들이 단 둘이 와서 한 칸 떨어져서 앉았어도 같은 곳을 보면서 투덜거리는 하는 모습, 한국시리즈 직관표를 구한 딸이 친구가 아닌 엄마와 함께 와 사진을 찍고 박동원의 역전 홈런을 보면서 소리 지르는 모습. (나의 엄마는 야구장에서 1회를 못 버티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족 구성원 간의 취향, 관심사에는 주목하지 않아 왔던 것 같다. 이미 가족, 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당연시했던 부분이 있다. 하지만, 가족도 여타 인간관계와 같이 같은 취향, 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떻게 접점이 생길 수 있을까. 

백 마디의 이야기보다 같이 좋아하는 존재 하나만으로 쉽게 끈끈해질 수 있다. 


나의 아이 역시 야구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아니, 야구가 꼭 아니더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가 오래 함께 연결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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