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기숙사) 퇴사해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일요일 오후 (기숙사) 입사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토요일 오전엔 집에서 학교로 등교해 운동(훈련)하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학교 생활 기숙사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면 "재밌어."라는 말뿐이었다.
아이는 점점 말수가 줄고 한숨과 잠이 늘었다.
어쩌다 묻는 말엔 짜증 섞인 대답으로 돌아왔다.
한번 걸린 감기는 약을 먹어도 몇 달씩 기침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 방엔 먹다 남은 진통제 껍질과 파스가 종류별로 뒹굴고 다녔다.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어?"
"없어. 다 괜찮아."
"엄마가 도와줄 일은?"
"없어.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어. 그건 엄마가 못 도와주잖아."
젖만 물려주면 울지 않고 잘 자서 키우기 수월했었던 아이.
그 아이는 커서 잠 때문에 또 어려움을 겪었나 보다.
(진짜 이 녀석 깨우려고 아침 7시~8시까지 소쩍새보다 더 슬피 울었다 ㅠ ㅠ)
침묵과 한숨의 주말을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간 아이로부터 늦은 저녁 전화가 왔다.
아이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
물으니,
"아니,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자꾸... 눈물이 나서... 엄마, 미안한데... 집에 다시 가면 안돼?"
"안 되긴, 네가 언제든 어느 때나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엄마아빠가 있는 곳이야. 애썼다, 그동안."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아이는 엘리트 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 아이가 실패했다고 했고, 누군 아이에게 '못난 놈'이라 불렀다.
'그들은' 몰라도 나는 아이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1점은, 이전 무게보다 1kg은 더 높은 걸 들어야 했던 그 무게를.
전학 관련하여 모든 절차는 담임선생님의 조언과 도움으로 순조롭게진행되었다.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 '패배자' 프레임을 씌워 힘들어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네 인생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면 돼.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바벨을 들어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나빴으면 경험! 좋았으면 추억!으로 생각하면 돼. 대신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함께 했던 시간들은 추억으로 기억해 주라. 전학 가서도 연락하고.'
가방에 역도화, (쫄쫄이) 역도복, 파스, 근육이완제가 뒹굴던 아이의 가방은
이제 실내화, 체육복, 하리보 젤리, 피크(동아리 밴드부에서 일렉 기타 파트) 뒹굴고 있다.
별명이 인간계 카피바라인 아이는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다.
땡글아~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엄마는 '어머니'가 백만 명쯤 될 거 같아. ^ ^
어른들도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단다.
근데 사실 우린 모두 그런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단단해져.
유능한 항해사를 만든 것이 잔잔한 물결이 아닌 거친 풍량인처럼.
선생님 말씀처럼 너는 다른 친구들이 해보지 않은
엄청나고 특별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은 네게 엄청난 지혜로 남겨져 있을 거야.
훗날 우리 땡글이에게 그 경험이 빛을 발할 때가 올 거라 믿어.
(어깨가 아픈 엄마를 대신해 장바구니를 다 들어주고 있으니, 벌써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