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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Nov 15. 2024

김장은 온 가족의 손이 필요하다

-어머니, 내년엔 김치 사 먹고 싶어요. ㅠ  ㅠ

"11월 첫째 주가 좋으냐? 둘째 주가 좋으냐?"

"네??"

"김장!"

마치 '아아마실래? 라테 마실래?' 묻듯

자연스럽게 훅~ 던진 어머니의 말씀에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어머니는 세 아들을 낳고 기른 것처럼 자신의 텃밭에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길러냈다.

주변에서 농촌 관찰예능이나 영화를 보고

한가하고 평화로운 농촌 생활을 하고 싶다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훗!! 그건 정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바쁘다 바빠~'외치는 도시보다 더 눈코 뜰 새 없는 곳이

농촌(시골)이고 농사꾼의 삶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텃밭에서 늦여름까지 고추를 따고 햇빛에 말려내고,

고춧대를 뽑아낸 자리에 배추, 무, 쪽파, 청갓등을 심고 들여다봤을 것이다.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 작물들은 하나같이 야무지고 단맛을 냈다.

올해  유난히 배추 무름병이 심해 김장할 배추가 없다며 걱정을 하셨는데,

나는 그 걱정이 금세 해결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집에서 몇(십) 포기 이웃집에서 몇(십) 포기를 흔쾌히 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김장을 안 해도,  못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 ^

대망의 '그날' 김장하는 날이 밝았다.

올해는 임관준비 중인 첫째와 열감기(다행히 백일해는 아녔다)가 심한

둘째를 제외하고 남편과 나만 시가로 출발했다.

김장 노동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배추 절이기를

올해는 동서와 서방님(시동생)이 담당해 주었다.

그 힘든 일을 해내고도 손윗동서인 내게 힘들다 내색 한번 없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마지막 헹굼을 마친 배추가 소쿠리에 엎어져 있고

무, 청갓, 쪽파 등 부재료 준비와 손질까지 돼 있었다.

타지에서 맞벌이하는 며느리 고생한다고 일을 하나라도 줄여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좇아가려야 좇아갈 수가 없다.

서둘러 김장 전용복(일명 올블랙)으로 갖춰 입고

며느리 취향에 맞춰 꺼내주신 인디 핑크색 고무장갑을 끼고 합류했다.

속을 버무리는 일은 해마다 남편의 몫이다.

계량이랄 것도 없이 어머님이 척척척~ 부재료를 쏟고,

찹찹찹~ 양념을 뿌려주면 군대에서 삽질 꽤나 해봤다던 남편이

두 팔 걷어 올리고 좌로 비비고 우로 비벼~버무려 낸다.

어느 정도 색깔이 나오면 노랗고 야들한 배춧잎 하나 떼어

김치소 얹어 맛보면~~ 말하지 않아도 엄지 척이 절로 나온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유행어 좇아 '이븐하다~' ^ ^)

여기까지 준비되면 짜짜라짜짠!! 드디어 선수입장!!

어머니 친구이자 이웃이자 동생이자 동서인 작은어머님이 위풍당당 등장하신다. ^ ^

뿌듯~~ ^ ^

기가 팍 죽은(?) 배추에 김칫소를 버무려 각자 준비해 온 김치 통에 차분히 넣어주었다.  

특히 배추김치 속에 박힌 섞박지를 좋아한다는 동서네 김치통엔

투박하게 썰은 재철 무를 듬뿍 박아 주었다. ^ ^

"김치통이란 게 돼지콧구멍만 해갖고(아... 강원도 사투리 여전히 어렵ㅠ), 이걸 얻다 쓴다니? 아휴~ 내 성에 안 차네. 안 차~~"

올해 김치 냉장고가 바뀌면서 덩달아 작아진 김치통에

김치 한쪽이라도 더 넣으려 고군분투하는 작은어머니 모습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어른에게 이런 말은 실례지만 정말, 귀여우시다 ^ ^)

(이렇게 먹어야 제 맛! 이라며 ^ ^)

아직 채워야 할 김치통이 더 남았을 때쯤, 성격 좋은 작은어머님이

"아니~ 이 집은 일꾼 새참도 안 주남?" 외쳤다.

아휴~ 그럴 리가요~~

시내에서 고기 맛이 제일 좋다는 정육점(식육점?)에서 사 온 고기로

만든 수육에 오늘의 노동주 소주 한 잔 곁들여 드리니,

빈 김치통이 빠르게 채워진다. ^ ^


해마다 김장철이 다가올 때면 나는 남편에게 퉁퉁거렸다.

직장인에게 재충전의 시간인 주말을 반납해야 하고

내려가는데 시간 걸려 기름값에 톨게이트 이용료 등 비용 들고

김치 담그느라 힘들고, 어머니 김장 비용 드려야 하고

김치 그거 얼마나 먹는다고 그냥 우리 식구 먹을 거 조금이니

편하게 사 먹고 말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김장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게 가능했던 건,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여서였던 것 같다.

누구 한 명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이 아닌

구성인 개개인이 역량에 따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마땅히 했기 때문에.

개꿀?이라고 한다. ^ ^

김장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아버님이 몸에 좋다고 개꿀을 가져오시더니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 내내 코를 훌쩍이는 내게 먹으라 떠 주신다.

그러시더니,

"이렇게 자식들 와서 복작이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말씀하신다.

가족 모두의 손길과 마음이 더해진 올해 김장,

시간이 지나도, 지날수록, 더 숙성되어 맛이 더 찐해지고 깊어질 것이다.

동서도 고생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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