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기억' 적립!
"애도 아니고, 생각이 없어. 생각이. 머리가 장식이야?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살면서 이런 비슷한 말을 한 번이라도 해보거나 들은 적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잘 몰랐을 때... 아이들이 생각이 없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그 어리석은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 아이들도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당연히 그 나이에 맞게 발달에 맞게 때론 유연하게.
나는 오히려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 없는' 미성숙한 어른들을 더 많이 보았다.
놀이의 창조자이자 예술가인 아이들. 매일매일 매번 새롭고 재밌는 놀이를 발견하고 어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엄청난 것들을 표현해 낸다(줄어들지 않는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아이템 고민이 없다~ ^ ^ ).
오늘도 아이들은 블록으로 로켓을 만들어 우주에 쏘아 올리고, 기하학적 건물을 뚝딱뚝딱 만들어 내고, 마시면 원하는 대로 맛이 나는 알쏭달쏭 주스를 만들어 내느라 와글와글하다.
아이들이 놀이가 잘 진행되고 있으면 불필요한 교사의 간섭이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사춘기 때, 다들 그런 경험 있을 거다. 친구랑 놀다가 갑자기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 별로 잘못한 일도 없는데 놀이가 멈추고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걸).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창의적 사고, 사회적 기술, 문제해결 능력, 신체발달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자란다는 말이 맞다. 교사의 역할은 유아들이 안전하게 놀이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고, 아이들의 자발적으로 놀이할 수 있게 조력한다.
물론, 유아들끼리 갈등상황이 벌어지거나 놀이를 정하지 못해 놀이에 참여하지 못해 서성이는 유아가 있거나, 놀이가 계획했던 대로 잘 진행되지 않거나, 아이들의 놀이를 확장하게 위해 촉진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교사를 놀이에 초대하거나 등등 여러 상황과 이유에 적절하게 개입한다.
아이들이 한창 놀이에 빠져 있을 때, 교사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 시간 누구보다 바쁜 게 교사다. 교사는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며 놀이를 관찰하고 <관찰일지>를 작성한다. 어떤 놀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놀이를 확장되었는지, 아이들끼리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지원한 놀이환경에 개선점은 없는지 등등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작성한다(원칙은 교사의 개인적 의견은 반영하지 않는다). 교사는 늘 교실 안 아이들이 전체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서서 아이들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새로 제시해 준 퍼즐의 그림을 맞추기 위해 아이는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퍼즐조각을 퍼즐판에 대고 튀어나온 부분을 억지로 맞추려고 애를 썼다. 세게 눌러보면 맞춰질 거라 생각했는지 급기야 손바닥으로 퍼즐조각을 퉁퉁 내려치기까지 했다. 어림도 없다. ^ ^ 그러더니 흥미를 잃은 듯,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00 이가 퍼즐을 맞추는 중이었구나."
"네. 근데 이거 잘 안 돼요."
"그렇구나~(평가_퍼즐 밑그림을 제시해 주어야겠다.) 선생님이랑 같이 해볼까?"
"아~~ 뇨, 저 생각하고 있어요."
으잉? 뭔 대화의 흐름이 이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행동도 생각도 방향을 알 수 없는 럭비공 같다. 당황하면 안 된다. ^ ^
"생각하고 있었구나, 근데 어떤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엄마가 안아준 거요. 엄마랑 아빠랑 그네 탔는데 아빠가 이렇게 밀었는데 떨어졌어요."
"아이코! 저런! 그네에서 떨어졌어? 많이 아팠겠다."
"여기가(꼬리뼈 있는 곳) 아팠어요. 그래서 울었어요, 그래서 엄마가 안아줬어요. 그래서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가 안아줘서 기분이 좋아졌구나."
"네,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서 안 아팠어요. 엄마가 아빠한테 '으이그~'했어요. 아빠가 그래서 탕후루 사줬어요. 선생님! 탕후루 먹어 봤어요?"
"그럼~ 먹어봤지."
"선생님은 어떤 탕후루가 맛있어요? 나는 귤이랑 샤인머스켓이 맛있어요!"
"오! 선생님도 귤이 제일 맛있었는데."
"에~엥? 똑같다!! 그럼 나중에 제가 천 백개 사줄게요."
"그래, 고마워. 그래서 이제 여기(꼬리뼈) 안 아파?"
"네에! 이제 안 아파요."
기억의 종류에는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이 있다. 대부분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장기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 데에는 생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마치, 오늘 아이가 떠올린 생각처럼.
아이와 대화하는 동안 나는 퍼즐 조각의 방향을 돌려가며 그림을 맞추는 모습을 시연해 주었다. 조금의 힌트로 아이는 금세 방법을 알아차렸다. 아이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퍼즐을 완성했고 그 완성한 퍼즐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자기 앞의 허들을 뛰어넘은 아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려 찬사를 표했다. 아이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무해하게 웃었다. 그리고 더 무해하게 묻는다.
"오늘도 젤리 타임 있어요?"
"음~~ 글쎄,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
나는 얼른 내 사물함에 몇 개의 사탕이 생존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의 수와 헤아려보니 부족하지 않은 수였다.
"작은 바늘이 '5'에 가고, 긴 바늘이 '12'에 가면..."
"얘들아, 오늘 젤리 타임 있대."
아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아이들을 향해 스포를 날렸다.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싱그러운 소리가 교실 빈 공간이 가득 채웠다(아이들의 소리는 새소리처럼 너무 듣기 좋다).
원칙은 외부음식 배식은 금지다(야박하지만 어쩔 수 없다 ㅠ ㅠ).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도 있고 급식 외 다른 음식을 먹고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칙은 금지지만 가정에서 원으로 보내는 간식(사탕, 젤리)을 아이들이 함께 나눠 먹는 일도 있긴 하다. 나는 조금 가격이 비싸도 아이들의 간식을 늘 고심해 골라 구매한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실물을 보여주고 일일이 허락을 구한다. 감사하게도 특정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의 부모를 제외하곤 모두 동의해 주신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부모가 아이의 간식을 따로 준비해 가방에 넣어 보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런 날엔, 아이가 당당히 말한다. '선생님 가방에 간식 있어요'라고 ^ ^. 일과 중 간식을 먹는 날엔 꺼내서 함께 먹으면 되고 안 먹으면 그대로 다시 돌려보내면 된다.
"내 거는 스트로베리 맛이야."
"너는 무슨 맛이야?"
"어! 너랑 나랑 똑같은 맛이다."
"나는 파인애플 맛이 좋아."
"나는 오렌지 맛!"
"어! 선생님이랑 똑같은 맛이다."
"나도!"
사탕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나는 '싱그러운 헛소리'라고 표현한다. ^ ^ 그 싱그러운 헛소리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평온하고 따뜻해진다. 어느 땐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나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귀한 아이들의 삶에 내가 끼어들어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고마움도 느껴진다.
아이들의 오늘이,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길 바란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어느 날, 가장 추운 어느 날, 생각으로 떠올라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나를 스쳐간 모든 아이들 모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