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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과장 Jun 19. 2023

장수풍뎅이 관찰기 2

그의 집을 바꿔줬다.
좁은 집에서 벽을 긁으며 사는 모양새가 답답해 보였고, 바닥에 깔아준 충전재는 배설물 때문인지 축축해졌다.

그가 우리 집에 온 지는 한 달이 다되어 간다. 아이가 다니는 과학 학원에서 관찰일기 작성용으로 나누어 준다길래 호기롭게 받아왔다.

오늘 새로 마련한 집은 그전에 살던 집보다 서너 배는 크다. 옆에 두고 보니 훨씬 높고 넓다. 제법 큼지막해 보였던 몸은 퍽 작게 느껴진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먹이통을 밟고 오르면 천정이 닿을 듯 말 듯 했지만, 이젠 턱없이 높다. 손을 뻗어도 결코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하다. 그는 팽창하는 우주에 놓인 작디작은 행성 같다. '아뿔싸' 싶다.

새벽마다 플라스틱 벽 너머를 향해 오르고 미끄러지고를 반복했었다. 벽을 뚫을 기세로 얇은 다리는 벽을 긁었었다. 그 고귀한 시도를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더욱 커진 우주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존재의 한계.


자유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그 작은집에 박제로 남겨져있을지 모른다. 무력감에 더 이상 작은 집에서처럼 뿔을 치켜들지도 손을 뻗어 하늘을 휘젓는 일도 하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장수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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