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의해 그만두지 않기를 결심하다

1장. 실연당한 기분이었습니다 (9편)

by 니나

“로란님, 아직도 회사 나가요? 아휴~ 힘들게 왜 그래요. 회사 나가지 마요. 그 시간에 좀 쉬고, 어머니랑 시간도 좀 보내고 그래요. 누구 좋으라고 회사를 나가서 그렇게 열심히 일해요?”

현재 내 사정을 잘 아는 지인 한 분은 틈틈이 메신저로 혹은 전화로 잘살고 있는지 내 안부를 물어봐 주었다. 그때마다 내가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고 있고, 지금도 내일 있을 광고주 미팅을 위해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한숨을 섞어가며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퇴사할 회사에 왜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버티고 있느냐,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쓰고 이직도 알아보라는 조언을 들으면, '그래, 그게 맞아.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고 속으로 백번 천번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미련한 구석이 있나 보다. 어릴 때는 융통성 없다는 어른들의 핀잔 같은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게다가 눈치도 없어서, 사회 초년생 시절 다니던 광고 대행사에서는 작은 골방같은 회의실에 불려가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니?’라며 과장님에게 한참을 혼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핀잔과 걱정 섞인 전화를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노무사의 조언 덕분이었다. 회사와 협상하기에 유리한 고지에 있으려면, 내가 '회사를 나갈 생각이 없다'는 점을 지속해서 어필하면서 회사에 트집 잡히지 않게 성실히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지식하게 그 조언에 따라 꾸역꾸역 회사를 출근하고, 광고주를 만나고, 캠페인 제안을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협상에서 유리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 파트너를 위해서도, 내 광고주를 위해서도 맞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두 생각 사이에서 감정이 널뛰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라며 마음을 다잡고 일단은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게 된 것은 이왕 시작한 일에 나를 말릴 수 있는 계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크게 싸운 뒤 토라져서 연락두절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혹은 상할 대로 상한 감정 때문에 너도 상처받으라며 나쁜 말들을 계속 꺼낼 때, 가끔 누가 나를 좀 말려줬으면 할 때가 있다. 물론 화가 났지만, 이 불쾌한 감정을 가능하면 빠르게 정리하고 없애버리고 싶고, 우리 관계가 이렇게 끝나버릴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적당한 시점에 미안하다고 하면 나도 얼른 마음을 풀고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화해하고 싶다. 그러나 그 사과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으면 화해를 그르치기도 한다. 상대방의 사과가 너무 섣부를 때는, 아직 나는 흥분한 감정을 삭이지 못해 그 사과를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게다가 방금까지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과하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반면에 사과가 너무 늦을 때는 이미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리고 싸울 때의 열정조차도 다 사라져 마음속에 재만 가득할 때도 있다.


그랬다. 나는 적당한 시점에 회사로부터 '미안하다'라는 제스처를 확인하고 싶었고, 이 불편한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나라고 어찌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버리고 그저 회사에 올인하고 싶겠는가.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트리를 꾸미지도 캐럴을 틀지도 크리스마스 디너를 준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이 서글픈 일상이 나라고 어찌 좋았겠는가. 하지만 회사와의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담당자는 바빠서 미팅을 몇 번 하지도 못했고, 나는 매일 하는 출근을 그만둘 계기를 찾지 못했다. 이 와중에 그저 쉬고 싶다고 갑자기 손에서 일을 놓아버리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는 협상이 잘 되었나 보다 라고 오인할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드디어 내가 백기를 든다고 판단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감정의 널뛰기를 멈추기로 했다. 누군가는 나를 미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나 스스로 회사를 나가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그냥 회사를 출근하고 원래 내 일을 하기로 했다. 아무도 내 일을 뺏을 수는 없다. 내 광고주를 만나는 것도 저지할 수 없다. 휴식은 회사를 제대로 퇴사하고 이 복잡한 생각을 비로소 그만둘 수 있을 때 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남자친구 같았던 회사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는 나만의 과정이다. 그의 사과가 진심이냐 아니냐는 이미 상관없다. 내가 싸우고 싶은 만큼 싸우고,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시점에 사과받고, 그래서 미련 없이 뒤돌아 헤어지고 싶었다. 기민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본다면 나는 어리석고 한심해 보일 테지.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에는 낡은 자동차 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 ‘펀’은 남편이 죽고 난 후 집을 처분하고 길 위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같은 동네에 살던 아이가 펀에게 ‘노숙자(Homeless)’냐고 묻자, 펀은 그 아이에게 ‘아니 집이 없을 뿐이야(Houseless)’ 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가족이 세상을 떠나고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Homeless가 아닌 Houseless를 스스로 선택하는 장면이다. 나는 나를 동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이 보기에 앞뒤 꽉 막힌 상황처럼 보이겠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예정이다. 그래서 스스로 그만두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타인에 의해 그만두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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