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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Mar 26. 2024

스트레칭

아침이 되어 알람이 울리면 이상한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킨다. 좀 더 어릴 때는 기지개만으로도 밤새 몸에 내려앉은 찌뿌둥한 느낌을 없애는데 충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정신과 달리 몸은 아직 꿈에서 못 빠져나온 듯한 느낌은 입안의 텁텁함을 느낄 때 더해진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서 양치질을 한다. 이어 상온에 둔 미지근한 생수를 한잔 가득 마시고 나면, 몸을 깨우기 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소파 앞 공간에 요가매트를 깔고, 늘 보는 유튜브 영상을 틀고,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25분에서 30분 정도 이어지는 골반스트레칭과 어깨 스트레칭을 마치면, 어젯밤과 아침까지 뻐근했던 왼쪽 골반과 허벅지 통증이 조금 사라진 걸 느낀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복부운동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지만, 이내 자신이 없어져서 '오늘은 여기서 이만'이라고 요가매트와 인사하고 돌돌 말아 정리한 후 따뜻한 물에 샤워한다. 


하루이틀 빼먹으면 골반이나 허벅지에 불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쩌다 한두 주 게으름을 피우면 다음번 생리기간에 어김없이 약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하복부 통증이 들이닥친다. 마흔이 넘은 후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 몸 이곳저곳이 경화되어 가는 불편함이 생겼다는 거다. 그런 느낌은 Y언니가 쓰러지고 세상을 떠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때 나는 깊은 우울감에 빠졌었고, 마음과 함께 일상과 몸이 무너졌었다. 괜찮은 척, 하던 일을 최소한으로 해나가고 있었지만, 혼자 남겨진 시간이 되면 어찌할 수 없는 억울하고 미안한 감정들이 폭발하듯 올라와 머릿속을 모두 점령해 버리고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나를 챙기던 일상이 멈추자 내 몸은 굳어가기 시작했고, 생리기간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온몸을 할퀴듯 지나가며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그 후로도 그런 몸살이 두어 번 지나갔었는데, 신기하게도 꿈에서 Y언니를 본 그날 이후 내 몸은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몇 주간 내 몸은 석고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아침일상을 재개한 첫날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을 스트레칭을 하며 비로소 깨달았는데, 가부좌가 힘든 것은 물론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 자세마저도 쇠파이프나 돌덩이가 다리와 팔 사이사이에 낀 것처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스트레칭을 재개한 지 2주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몸상태로 아직 돌아가진 못한 것 같다. 여전히 부어있고, 어깨는 딱딱하고, 군데군데 두드러기가 났고, 얼굴에는 뾰루지가 올라와있다. 그래도 매일아침 아주 조금씩 다시 유연해지고 있는 몸을 보며 뿌듯해하는 소소한 재미도 다시 발견하고 있다. 


요가매트 위에서 척추를 늘리고 다리를 일자로 뻗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굳어지는 게 단연 몸 만은 아닌 듯했다. 비슷한 일상과 늘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내 생각도 굳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견이 맞지 않다거나, 성향이 틀리다거나, 뭔가 불편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만나기가 꺼려지는 사람들. 그렇게 싫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났고, 그런 사람들의 전화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하는 건 굳어진 내 마음과 생각의 증거들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니체나 쇼펜하우어는 고독을 즐기고 이용하라고 하지만, 그게 불편한 사람을 피하라는 이야기는 아닐 텐데. 그들을 옆에 둠으로써 나를 다시 볼 수도 있고, 반성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세상과 생각을 만나고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새롭게 알아가고 호기심을 유지하고 어린아이의 말랑말랑함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요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자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자유, 궁금한 것들을 찾아 헤매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오히려 나를 더 속박하고 옭아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다 뻣뻣해 골반과 어깨처럼 내 생각도 굳어져가는 건 아닐까. 편향적 사고에 고리타분한 꼰대 같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의 쌀쌀한 기운에 소름이 올라왔다.


굳어진 몸을 다시 펴는 데에는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팔다리를 쭉쭉 뻗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며칠 쉰 후에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내가 유연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이미 악화된 것을 돌이키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꾸준함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제 늦은 오후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전 직장동료인 그는 종종 잘 지내고 있는지 전화나 SNS로 안부를 묻곤 했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히키코모리처럼 밖에 나가지 않고 겨울잠 자는 곰처럼 숨죽이고 살았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콜포비아(전화공포증)에 걸렸는지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의) 전화를 안 받기도 했다고 했다. "어허 안 되겠네, 이제 날 풀렸으니 4월에 얼굴 봐요."라는 그의 말이 사뭇 반갑다가도, "그럼 누구누구 모이라고 할까요? 보고 싶은 사람 있어요?"라는 말에 금세 움츠러들었다. 혹여 불편한 사람이라도 마주칠까 봐, 아니면 그사이 서로 다른 세상에서 달라져버린 나와 상대방의 거리감에 어딘가 뻐근하고 어색할까 봐, 누구를 부르자는 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온몸과 생각을 거리낌 없이 좌우로 위아래로 쭉쭉 뻗어서 잃어버리고 있는 유연함을 찾아올 때다. 나도 모르는 새에 돌처럼 굳어진 내 껍데기 안에서 뒤늦게 답답하다 비명 지르기는 싫으니까. 내가 저지른 실수에 무지함에 게으름에 갇힌 나를 발견하는 건 너무도 끔찍하니까.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미리미리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이미지출처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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