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잘 먹고 잘 자고 잘 놉니다 (6편)
“회사를 쉬니까 뭐가 제일 좋아요?”
“음…. 제 의식의 흐름대로 생활하는 거요!”
“와! 너무 좋다”
단골 미용실에서 내가 쉬고 있다는 이야기에 선생님이 물어보더니 감탄했다. 말하고 나서 나도 내 말에 감탄했다. 그래 맞아! 나는 지금 내 맘~대로 살고 있지. 그래서 너무 좋지. 내 맘대로라는 게 어떤 거냐면, 생각의 흐름대로 그때그때 주저 없이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아예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 다닐 때보다야 훨씬 여유로운 시간이 많으니, 하고 싶은 것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할까 말까 고민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곧장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예술가 이자람 씨의 ‘오늘도 자람’이라는 에세이를 보다가 우리 가야금 선생님이 생각나기도 했고, 성음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그의 공연이 있는지를 검색하고 마침 오픈한 판소리 공연이 있어 맨 뒤쪽 구석 마지막 한좌석을 예매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 나는 근처 카페에 남자친구를 맡겨두고 혼자 이자람 씨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왔다. 한 번은 양자컴퓨터에 관심 있는 분과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뭔지 무척 궁금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평소라면 내일을 생각해서 일찍 잠들 시간이었지만, 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 이어서 양자 컴퓨터까지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늦은 밤 혼자 공부하기도 했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친한 동생 Y는 ‘왜요? 왜 그런 걸 공부해요?’라고 물어봤는데, 글쎄 나도 모르겠다. 그냥 궁금하니 찾아봤을 뿐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예능프로에서 원진아 배우가 낫토로 삼각김밥을 만들어 먹는 것을 봤는데, 그 맛이 궁금해진 나는 난생처음 낫토와 삼각김밥 틀을 샀었다. 엄마가 아침마다 젓가락으로 휙휙 저어 먹을 때마다 ‘아침부터 꾸릿꾸릿 냄새나’라며 인상을 팍 썼었는데, 갑자기 그 맛이 궁금해진 나는 다음날 바로 낫토 삼각김밥을 만들어 먹었고, 그 후로 그 꾸릿꾸릿 냄새나는 음식은 구수한 별미가 되어 매일 한 개 이상 먹어 치우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는 에세이를 보고 유진목 시인이라는 분이 참 궁금했었는데, 위트앤시니컬에서 그분 강의를 한다는 SNS 공지를 보고 6차나 되는 강의를 서둘러 신청했었다. 6차 강의를 다 듣고도 나는 여전히 시가 어렵지만,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지, 앞으로 나는 시를 어떻게 읽으면 되는지를 조금 감을 잡은 듯해서 무척이나 뿌듯한 시도였다. 뒤늦게 호암미술관에서 김환기 전시회가 있다는 글을 보고, 막 내리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지 싶어 다음 날 아침 일찍 그곳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많이 막혔지만, 다행히 미술관은 그리 붐비지 않아, 여유 있게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추상미술은 예술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한국과 뉴욕에서의 작품 세계가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점만으로 이뤄진 회색의 그림이 그의 삶이 죽음에 가까워진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전쟁 중에 다락방에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뉴욕에서 몸이 예전만 하지 않음에도 매일 매일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그의 모습에 나의 매일매일은 그만큼 뜨거웠는가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요즘 나는 정말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 욕망을 채워가며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늘 언젠가는 해야지, 다음에 시간 나면 가봐야지 하던 것들을 즉석에서 해치우고 있으니, 지금 나는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 S와 파주 출판단지를 갔을 때의 일이다. 북카페에서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며 커피 한잔하는 것도 좋았고, 우리가 좋아하던 출판사 외벽 건물만 보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 어느 가구 전시점에 들어갔는데, 맘에 드는 소파에 있어 우리 둘은 나란히 그 소파에 앉아 팔걸이도 만져보고 가격도 보고 속닥속닥 이곳이 맘에 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7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가 내 옆으로 쓱 오더니 고개를 옆으로 숙여 우리 둘 사이에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었다. “아이코 깜짝이야!” 갑자기 나타난 아이의 얼굴에 친구는 깜짝 놀라 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아이는 바로 눈앞의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쫓아오셔서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면 안 돼!”라고 아이에게 주의시키고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실 그리 놀라진 않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그 작은 아이가 대체 무슨 생각에 그랬을지 궁금했고 그 모습이 귀여웠다. 잠시 그 가구점 안을 더 둘러보다가, 어쩌다 우리 앞을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를 급히 꺼내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아이는 우리가 또다시 궁금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고, 나는 운 좋게 그 모습을 필름에 담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너가 궁금했나보다. 어쩌면 누구랑 닮았는지도 모르겠고.” 그 아이는 나에게 뭐가 궁금했을까? 나를 보고 누구를 떠올린 걸까? 알 방법은 없었지만 한참이나 그게 궁금했다. 그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오는 스스럼없는 접근이 귀여웠다. 아이의 어머니가 너무 죄송해하지만 않았어도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어린 시절 내가 생각났다. 궁금한 건 못 참고 “왜”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는 아이였는데, 엄마와 아빠는 고맙게도 나에게 한 번도 그 “왜”를 귀찮아하지 않았고, 쉽든 어렵든 답을 함께 찾으려고 노력해주었다. 그땐 나도 그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았고 매일 그 호기심을 채워가며 지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질문이 없어진 어른이 되어있었다. 괜한 질문으로 말의 흐름을 깨기가 싫었고, 그보다도 그 질문으로 인해 내가 어리석거나 무지하다는 걸 들킬까 봐 겁이 났었다. 이왕 질문하려면 날카롭고 똑똑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상대방으로부터 “오, 날카로운 질문입니다.”라는 칭찬을 듣고 싶었었다. 그러나 혹여 잘못 질문하여 주변으로부터 ‘무슨 그런 질문을 해, 미팅만 길어지게’라는 핀잔을 들을까 봐 겁이 나기도 했었다. 그즈음 나는 자주 땅을 보고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많이 둘러보고 많이 관찰하고 싶었지만, 마주 오는 모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시선을 어찌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순수한 호기심을 위한 겁 없는 관찰과 자유로운 탐구가 어려워졌다.
그런데 나는 다시 그 아이처럼 되어가고 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 선생님이고 백과사전이다. 보고 싶으면 찾아가고, 궁금하면 물어보는데, 예전에 비해 거침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막 회사라는 껍데기를 깨고 진짜 사회에 나온 초년생이기 때문이다. 사진 찍는 것도 글 쓰는 것도 하물며 양자역학도 나는 이제 막 알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덩치 큰 어른이 뭘 모른다고 자꾸 물어보면 창피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눈치 보는 것보다 궁금해서 못 참는 게 더 커진 요즘이다. 게다가 나부터도 내가 아는 걸 누군가 물어보면 신이 나서 답해주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요즘 내 의식의 흐름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질문하고 알아보고 친해지고 있다.
어린 시절 아빠는 특히나 내 질문을 잘 받아줬다. 늘 진심으로 답을 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던 증거 기억이 하나 떠올라 여기 공유해본다.
학교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고학년이 되자,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나눠 외부에서 오신 낯선 선생님에게 수업을 따로 몇차례 들었다. 바로 성교육이었는데, 내 추억 속에 기억나는 그날은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생리한다’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생리대는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도 그날 배웠다. 집에 오자 나는 궁금한 게 생겨서, 저녁 준비를 하는 엄마와 석간신문을 보고 있는 아빠에게 또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빠,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생리한대.”
(여전히 신문에서 눈을 못 떼는 아빠) “응, 그렇지.”
“남자도 생리해? 남자도 한 달에 한 번씩 해?”
잠시 적막이 흐르더니 (엄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마에서뭔가를 써는 통통통 소리가 기억난다) 마침내 아빠가 신문을 내려놓고 답했다.
“음…. 남자도 하는데, 남자는 수시로 해.”
“아 그렇구나. 남자는 수시로 하는구나. 와 불편하겠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가 수시로 하는 생리’의 정체를 알고 난 후, 나는 이때의 추억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난 정말 우리 아빠를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