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1편)
퇴사자들끼리 이별 여행을 떠났다. 제주 한달살기 하고 있었을 때,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 데로 어디론가 짧게라도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1박 2일, 장소는 바다, 맛있는 식사와 술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된 곳은 강릉 바다였다.
평생 누굴 사귀고 헤어질 때도 이별 여행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헤어지는 마당에 여행은 무슨 여행이야.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로맨틱한 이벤트를 회사와 이별하면서 계획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웃겼다. 그래도 그걸 핑계 삼아 좋아하는 이들과 여행가고 먹고 마시고 하는 건 언제나 대환영이다. 우리의 이별 여행이 드라마와 달랐던 것은 이별 상대는 없고 이별 당한 인간 들만 모였다는 점이었다. 그럼 어때. 우리는 함께 떠나는 첫 여행에 신났고, 여행을 준비하는 메신저는 수다스러웠고, 강릉으로 떠나는 그날은 끝내주게 좋은 날씨였다. 따뜻한 태양에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함께 어우러진 여행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바다를 보며 와인을 한잔하고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강릉 바다를 바라보며 요가와 명상을 즐겼다. 옷을 갈아입고 분위기 좋은 오마카세 레스토랑에서 술과 요리를 즐겼다. 몸과 마음, 입과 귀가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같은 고통을 함께 겪어낸 동지애 같은 것이 있어, 그 시간 무얼 하든 즐거웠으며, 앞으로도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었다. 당황스러운 메일을 각자의 집에서 확인하고 놀랐었고, 함께 노무사를 찾아가 상담했고, 술잔을 기울였고, 서로의 등을 쓸어줬었다. 그리고 이제, ‘끝났다!’라는 홀가분한 기분도 함께 느꼈다. 그러기에 파란 바다로의 여행은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는 중 M은 계속해서 태블릿 PC를 펴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출장 같은 회사 일로 썼던 경비 처리가 끝나지 않아 서류를 만들고 매니저와 연락하고 승인 절차를 밟고 있었다. 미련이 남았던 건지, 아니면 너무 강렬한 번아웃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무튼 그 모든 원인이 섞이고 뭉쳐 끈적이는 진흙이 되었고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이별하는 이 여행을 기점으로 이 절차를 마무리하고 싶었고, 이혼 분쟁을 끝내듯, 금전적이고 행정적인 모든 것들을 정리하려 애를 썼다. M을 제외한 우리는 스포츠 경기 응원이라도 하듯, 각자 편의점에서 고른 술을 손에 들고 M을 향해 ‘빨리빨리’를 외쳤다. 그날 밤, 경비 처리는 M의 이별 의식이었고, 경비 처리가 완료되는 그 시점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순간이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듯, 그리고 우레같은 박수를 받듯, 그가 태블릿 PC를 덮는 순간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고 함께 술을 마셨다.
내가 경험했던 글로벌 구조조정은 2022년 11월에 있었다. 그 후로도 회사는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서로 다른 부서가 돌아가며 타격을 받았고,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한국 사무실에도 타격이 있었는데, 내가 잘 알고 좋아하던 이들이 23년 5월에 영향을 받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회사는 나를 대할 때보다 좀 더 영악해진 것 같았고, 영향받은 직원은 그게 누구든 처음이기에 마찬가지로 힘들어했다. 정신 바짝 차리라고, 친구 A가 나에게 했던 말을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그곳을 먼저 벗어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구조조정으로 남은 이들은 지쳐갔고, 혹여라도 업무가 느슨해 보이거나 여유로운 태도를 꼬투리 잡힐까 봐 예전보다 더 강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어떤 조직은 서로 날이 서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상처를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된 꼴이었는데, 멀리서 본 그곳은 마치 지옥 같았다. 그래서 그곳을 잘 빠져나온 나에게 고마웠고, 동시에 남은 자들에게 미안했다.
회사와 이별했지만, 미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와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 면접을 본 것도 어쩌면 나한테 생긴 커다란 구멍을 그런 식으로라도 메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종종 회사 직원들끼리 저녁 회식하는 사진을 SNS에서 볼 때면 저곳에 나도 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테헤란로를 지나가며 회사를 멀리서 볼 때는 저곳에서 있었던 짠내 나는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모두 잘 지내는지?
그러던 내가 완전히 회사를 잊었다고 생각한 건 8월 중순 한창 더운 여름날 아침이었다. 꿈에서 나는 소행성 워크숍 동기인지 친구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가까운 이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나는 건 대화 내용이다.
“로란님은 글쓰기 속도가 어때요?”
“저는 뭔가에 꽂힐 때는 빨리 쓰는 것 같은데, 퇴고가 오래 걸려서 결국 시간이 꽤 걸려요.”
“그래요? 나도 좀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근데 주로 언제 써요? 아침? 밤?”
“아침에도 좀 쓰고 밤에도 좀 쓰는데, 요즘 안 써져서 죽겠어요.”
그러다 깼다. 너무 놀랐다. 회사 일을 하는 꿈은 꿨어도, 글 쓰는 꿈은 처음이었다. ‘야~ 내가 책은 없지만, 작가가 다 됐네.’라는 뿌듯함과 함께 드디어 회사는 나에게 말 그대로 아웃 오브 안중(관심 없음)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에서 막 깨어나 정신없는 상태에서도 혼자 낄낄거렸다. 누가 보면 구겨진 잠옷에, 머리는 산발에, 얼굴은 개기름에, 눈도 못 뜨고 낄낄거리는 모습이 미친년 같겠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한참을 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