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잘 먹고 잘 자고 잘 놉니다 (3편)
나는 가야금을 10년가량 배우고 있다. 좀 더 연습에 매진하고 실력이 올라간다면, 어디 가서 ‘가야금 연주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에 멋들어지게 한판 연주해주고 싶은 아마추어 가야금 연주자 지망생 정도 되겠다. 10년이면 당연히 그 정도는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국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린 시절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피아노 학원을 몇 년간 꾸준히 다니고 콩쿠르도 나간 경험과 어설프게나마 비교해 보자면, 누군가 앞에서 그럴듯하게 연주해 본다는 정도의 경지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피아노보다 가야금이 훨씬 더 긴 듯한 느낌이다. 나이 들어 배운 거니 어린이 때 배운 거랑 같겠냐는 말을 듣는다면, 그 또한 맞는 말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10년째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 매주 선생님 댁에 가서 산조를 배우고, 매월 한 번씩 다른 학생들과 모여 민요나 신곡 등을 배운다. 그리고 매년 한 번꼴로 선생님과 학생들과 준비한 것들을 정기 공연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가야금 연주자 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다.
처음에 가야금을 접하게 된 건, 10여 년 전 남자친구 어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가야금을 선물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친구분이 가야금을 만드는데, 원한다면 가져가도 된다는 말에 두 개를 가져와 하나를 나에게 주시는 거란다. 내가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내 키보다 약간 작은 악기가 졸지에 생겼고, ‘가야금을 배워보라는 말인가?’라고 그분의 의중이 뭘까를 한참 고민했었다. 그런 내 황당함과는 상관없이 남자친구는 신이 나서 이 기회에 한번 배워보라며, 문화센터 같은 곳을 알아봐 줬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었고, 외가 쪽 사촌 언니와 오빠는 각각 피아노와 성악, 지휘를 전공했고, 동생은 대중음악 작곡을 하고 있다 보니, 서양음악은 늘 친근하고 좋아하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국악은 정말 국악 놓고 ‘ㄱ(기역)’도 모르는 국악 일자무식인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가야금이라니….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악기를 눈앞에 두고 참 낯설었었다. 반면 남자친구는 주말 국악방송을 찾아볼 정도로 국악의 참맛을 아는 사람이라, 눈앞의 가야금을 여자친구가 연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흥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떠밀리듯 찾아간 문화센터의 가야금 강좌는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이 되었다. 그래서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또다시 남자친구의 등쌀에 폐강된 강의의 선생님 댁을 찾아가게 되었고, 나는 그 선생님께 10년째 매주 가야금 강습을 받고 있다.
‘가야금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그렇게 꾸준히 가야금을 배우다니, 로란님 대단해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지금은 가야금 음색을 정말 좋아하고,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뿌듯하지만, 처음부터 그 소리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 소리는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좋았지만, 내 가야금은 땍땍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고, 손가락은 아파서 물집이 잡혔고, 좀 제대로 한 날은 물집이 터지고 쓰라려서 며칠 동안 반창고를 칭칭 감고 다녀야 했다. 국악을 좀 느껴보겠다고 간 연주회에서는 관람석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얼쑤, 좋다~’라는 처음 들어보는 추임새에 깜짝깜짝 놀랐고, 처음에는 ‘관객들이 예의가 없구나. 연주를 조용히 듣지 못하고 왜 이렇게 소리를 낸대’라며 혼자 속으로 투덜거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나여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국악은 서양음악과 달리 관객과 연주자가 소통하며 한판 만들어가는 음악이며, 그렇게 절묘하게 추임새를 잘 넣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연주자의 음악이 관객의 가슴을 울리면 관객은 즐거움에 추임새를 넣는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추임새는 다시 연주에 흥을 돋운다. 어설프거나 잘못 튀어나온, 혹은 너무 많은 추임새는 불협화음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 보니 적절하게 튀어나오는 추임새는 그 관객의 국악에 대한 애정과 내공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여하튼 그렇게 나에게 낯설고 어려운 가야금을 왜 지금까지 했을까 돌이켜보면, 처음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재미였던 기억이 난다. 뭐든 처음일 때는 어렵고 어설프지만, 오히려 그렇다 보니 매주 조금씩 달라지는 내 모습과 연주가 신이 났다. 공부나 일이 아니라 취미라서 부담도 없었고, ‘옳지, 그렇게, 잘한다’라는 선생님의 추임새 같은 칭찬 말이 달콤했었다. 어느 날은 ‘나 정말 소질이 있나?’ 싶은 착각이 들기도 했었다. 내가 늘 하는 전문 분야에서는 하루하루 성장하거나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기는 좀 어려운 편이다. 왜냐면 이미 어느 경지까지 올라갔으니, 거기서 더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만큼 성장하기란 쉽지 않고, 성장을 했다 하더라도 체감상 내가 좋아졌구나! 라고 느끼기에는 그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시작하는 취미는 달라지는 것이 금세 느껴지니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아가 내가 정말 잘한다는 착각 같은 즐거움도 느낄 수도 있었다. 특별한 일 없는 회사원의 생활에서 새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 자체가 나에게 더 자신감을 주고 여유를 불어주었다.
그렇지만 10년 가까이 배우고 있는 것에는 우리 선생님의 공이 크다. 국악 선생님 하면 나이 지긋하고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날 텐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선생님보다는 좀 더 젊고 가끔은 귀여우실 때도 있는 분이다. 그런데 연주할 때와 가르칠 때는 카리스마가 넘쳐서, 새로운 가락을 배울 때는 주의 깊게 선생님의 연주를 귀담아듣고 외우려고 애쓰게 된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데로 현을 뜯지 못하거나 호흡이 무너지거나 그런 실수가 서너 번 같은 곳에서 반복되면 불호령이 떨어질 수도 있다. 바짝 긴장하고 주의 깊게 듣게 된다. 게다가 나는 피아노를 배웠던 습관으로 국악 악보를 잘 못 보는 얄궂은 버릇이 있어서, 악보가 있어도 그걸 보고 따라 해보는 것보다 선생님 손가락과 소리를 듣고 그 즉석에서 외우며 배우는 편이다. 피아노의 음계와 국악의 음계가 다르기 때문에 가야금을 처음 배우던 시절 악보를 보고 따라 하다가 너무 울렁거리고 머리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악보보다는 보고 듣고 외우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순간순간 선생님의 소리에, 손가락에 더 집중해야 했다.
선생님 연주를 귀담아듣고 따라 하면서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이었다. 퇴근하고 들른 선생님 댁에서 나는 가야금에 손을 얹고, 귀로는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회사 일과 집안일 같은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그러나 틀리지 말아야지 하며 집중하는 어느 순간, 뿌연 아침 안개가 해가 뜬 후 슬금슬금 사라지듯 머릿속의 잡념이 사라지고, 그 속에 가야금 소리와 선생님의 말소리, 한 음도 빠뜨리지 않겠다 집중하고 있는 내 숨소리만 남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짧은 산조를 선생님과 한판 타고나니, 이마와 코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가벼운 운동을 한 것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아주 짧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음아일체(音我一體) 했다는 것을.
내가 진짜 가야금에 빠지게 된 것은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 순간은 짧지만 강렬해서, 휴가를 내고 2박 3일 어딘가 여행 다녀온 것보다 더 리프레시되었었다. 누군가는 ‘에이 거짓말. 과장이 심하네.’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 몰입하여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되는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의 찌꺼기가 싹 사라지는 것을 느껴본 나는, 그보다 더 강렬한 쉼, 리프레시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 일이 힘들고 지친다는 친구를 보면 넌지시 권하곤 한다. 하는 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보라고.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려보거나.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즐거움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목격할 수 있고, 어느 몰입의 찰나에 머리와 가슴과 내 몸통이 깨끗하게 싹 비워지고 다시 새로운 무언가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매주 습관처럼 선생님을 뵙고 연습했다. 내 전문 분야도 아니고, 내 밥벌이랑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도 아니다 보니, 잘해봐야지 하는 욕심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 바람 불어오듯 그냥 그 시간이 되면 선생님 댁을 찾아갔었다. 고집도 편견도 없이 들리는 데로 따라 하고 호흡하라는 데로 숨 쉬고, 그렇게 시간이 켜켜이 흐르고 나니 나는 어느새 김죽파류 긴 산조를 배우고 있고, 올해 공연에는 세곡이나 올라갔고, 내 연주에서도 듣기 괜찮은 그럴듯한 소리가 나고 있다. 이제 와 돌아보니 그게 벌써 10년이다. 가야금을 하면서 시간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반복해서 묵묵히 해 나가는 것들, 그래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경험 들이 퇴적층의 모래처럼 쌓이는 것들을, 욕심 없이 지켜보다 보면 나는 어느새 많이 달라져 있게 된다는 것을 가야금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마추어니까 성과를 내야 한다거나, 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거나, 주변 눈치 보고 애쓰는 것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서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전공자가 아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틀에 박힌 생각을 하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가야금을 배울 작정이다. 그래서 아마추어 가야금 연주자가 되어볼 생각이다.
나에게 가야금을 선물해 주셨던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내가 가야금을 몇 년째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뒤늦게 놀라셨다고 한다. '아니, 선물도 해주셨으면서 왜 놀라시지?' 내가 더 황당해서 여쭤보니, 그냥 가야금이 예뻐서 집에 두면 인테리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 나에게 선물한 진짜 이유였단다. 그 가야금은 연주용 악기로는 상품 가치가 떨어졌기에 친구가 그냥 준 것이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체 '이걸 왜 저에게 주시나요?'라는 질문을 감히 하기 어려워서 이렇게 10년째 배운 거였다. 괜한 압박감에 시작했던 가야금인데, 인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짝 어긋난 오해로 나는 여태껏 좋은 취미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