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춥지 않았다.

1장. 실연당한 기분이었습니다 (5편)

by 니나

겨울이 되면 나는 오래된 디젤 차량처럼 덜덜덜 떤다. 추위를 엄청나게 타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가 어느 날 느껴지기 시작하면, 머리로 눈치채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맛집에서 줄을 서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차가운 공기를 가만히 서서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나도 모르게 몸이 달달 떨리기 시작한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코트 깃을 있는 데로 올려 목을 감싼 다음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리가 위아래로 진동한다. 그럼 옆에 함께 서 있던 남자친구는 “겨울 왔나 보네, 시동 걸었다.”라며 놀리듯 이야기하고 우리는 계절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그래서 겨울은 나에게 생존해 내야 하는 계절이다. 남들이 뭐라고 놀리든 가을부터 내의를 꺼내 입고 수면 양말은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필수로 신는다. 패딩은 봄까지 꺼내놓으며,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잘 못 마신다. 핸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량 옵션이다. 엉따의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면 몸이 스르륵 풀리면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그런 내가 이상하게 올겨울 전혀 춥지 않다. 가끔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춥지가 않다. 다리도 더 이상 디젤 차량처럼 떨지 않는다. 출근길에도 외근길에도 노무사를 만나기 위해 노트북을 두 개씩 들고 움직일 때도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겨울인데 나는 이상하게 춥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한 밤이 된 어느 날이었다. 보통은 이런 날 담요를 둘둘 말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듯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엄마랑 수다를 떤다. 그런데 든든한 저녁을 먹고 난 후 속이 더부룩해서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상한 일이지, 이 밤에 내가 산책이라니. 엄마도 운동이 좀 필요하겠다 싶어 같이 걷겠냐고 물어봤지만 추워서 안 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허리까지 오는 얇은 패딩이면 되겠다 싶어 그 차림으로 나가려는데 감기 걸린다며 엄마가 극구 말렸다.

“아니, 그렇게 입고 어딜 간다고. 춥다! 감기 걸린다~ 더 두꺼운 거 이거 입어라!”

“안 춥다~ 하나도 안 춥다니까~ 나는 지금 이게 딱 좋다. 간다.”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입던 그대로 나왔는데, 정말 동네 사람들이 두툼하고 긴 다운 코트를 하나같이 입고 산책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하나도 안 추웠다. ‘혹시 살쪘나? 피하지방이 두툼하게 깔려있어서 옷 하나쯤은 덜 걸쳐도 안 추운 건가?’ 그런 생각에 뱃살도 요리조리 잡아보고 체중계에도 올라가 봤지만, 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하다. 몸무게는 오히려 4킬로그램이나 빠져서 코로나 후유증으로 뭘 제대로 못 먹을 때의 몸무게로 돌아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배가 안 고팠다. 밥을 안 먹어도 기운이 없거나 처지지 않고 오히려 가벼워서 좋았다. 오히려 좀 먹는다 싶으면 명치끝이 송곳으로 쿡쿡 쑤시듯 아파서 결국 훼스탈이나 카베진 같은 소화제 들을 꺼내 입에 털어놓곤 했다. 그래서 먹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몸의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좀 더 기민하게 신경을 써야겠다. 지금은 노란불인 것 같으나, 언제 빨간불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생각을 더듬다 보니 올해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 회사도 나가게 된 마당에 혜택은 빠지지 않고 다 챙겨 먹어야겠다 싶어 얼른 예약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잘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인분의 추천으로 회사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도 예약했다.


겨울은 추워서 생존해 내야 할 계절이었는데, 알고 보니 회사 덕분에 추위도 못 느낄 만큼 이상해져서 이 겨울을 다른 의미에서 생존해 내야 하게 생겼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잘못도 없는 나를 밀어내려는 회사 때문에 억울했는데, 몸까지 이상해졌다 싶으니 화가 올라왔다. 나는 이렇게 힘든지도 모르게 힘든데, 회사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인원 감축 후 주가가 올라서 CEO는 신이 난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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